‘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대전 역에 정차하겠습니다.

비몽사몽한 채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은 지 한 시간쯤이 지났나보다. 어제 글쟁이 선배와 담소를 나눈 후, 그 어느 때보다도 창작에 대한 욕구가 불타오르고 있다. 마침 기차라는 공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작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뚱아리는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는지 하염없이 하품을 쏟아낸다. (아마 곧 곯아떨어질 예감이 든다.)

나는 지금, 남해로 가고 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거절하기 어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여행 제안이다. (사실 맛있는 음식도 참 좋아하는데, 여행이라면 모름지기 식도락이라는 요소를 꼭 포함하기 때문에 여행이 제일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나의 속성을 꿰뚫어본 귀신같은 여인네들의 꾐에 넘어갔다. 당장 일 주일 후에 반년간 벼뤄온 여행일정이 있고, 주말에 작업해야할 일이 있고.. 라고 하면서 난색을 표하면 뭘하나. 이미 내 손은 출발 집결지인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결제하고 있는 것을.

여행을 떠날 때는 일상에서보다 책을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집중이 잘 된달까. 한 달 전쯤 사두고 재밌게 읽기 시작해 아껴둔(늘 완독을 잘 못해내는 내 독서버릇을 탓해본다.) 책 한 권을 아침 댓바람 여행길에 집어들었다.

영국에서의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영국에서의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영국에서의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부제는 [코미디언 무어씨의 문화충돌 라이프]. [이안무어] 지음, [박상현] 옮김, [남해의봄날] 펴냄.

어딘가에서 읽은 소개글을 읽고 마음이 끌려서 주문한 책이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에는, 우리나라 책답지 않은 가벼운 무게(500페이지에 가까운데도 꽤 가볍다!)와 깔끔한 편집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가벼운 문고판 책 발간이 어렵다고 알고 있기에, 여행길에 오를 때면 늘 외국원서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원서는 책장에서 나의 지적 허영심을 대변해주는 인테리어 소품일 뿐)

스탠드업 코미디를 업으로 하는 모드족 영국 신사 이안 무어(Ian Moore)씨가 프랑스 시골 농장에 정착하여, 발 네개 달린 식구들을 포함한 대가족을 꾸리고 사는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엮어 놓았다. 프랑스인과 영국인이 서로를 미묘하게(아니 어쩌면 대놓고) 꼬집는 특성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뾰로통한 영국신사의 글 솜씨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읽다가 피식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차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잠들어 있어 다행이다.

내가 못 참는 건 항상 똑같은 길로 가는 것이다. 가능하면 멀리 돌아가면서 기어도 바꾸고, 이런저런 교차로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도로나 새로운 경치를 찾아가는 게 좋다. 출장을 많이 다니는 것도 이런 성격과 관련이 있겠지만, 나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흥미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가고싶은 곳에 간다. 나는 자유인이다. (121p)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나도 이런 자유인이고 싶다. 아니 이미 나는 자유인이다. (확언을 해서 그렇다고 해버리자!) 그래서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한 0.5초는 했으려나) 했지만 지금 떠나는 중이겠지.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동대구역에 정차하겠습니다.

(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는데, 그새 한 시간이 또 지났다니 )

기차에 올라서 책을 읽는 도중에야 이 책을 펴낸 곳이 “남해의봄날”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니 또 내가 남해로 가는 중인 건 어찌 알고!

책 맨 마지막 장에 조그맣게 적힌 글귀가 이 출판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책 날개에 적혀진 책과 출판사 소개. 이것만 봐도 봄날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 하다.
책 날개에 적혀진 책과 출판사 소개. 이것만 봐도 봄날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 하다.

도서출판 남해의봄날 로컬북스 – 이웃한 도시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자연과 문화,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독특한 개성을 간직한 크고 작은 도시의 매력, 그리고 지역에 애정을 갖고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해의봄날이 하나씩 찾아내어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직 책은 반절도 못읽었지만, 하품으로 계속 SOS를 보내오는 몸뚱아리를 졸음에서 좀 구제해줘야겠다 싶어서 얼른 떠오른 이미지를 스케치북에 그리기부터 했다. (사실 책에 이미 일러스트가 있어서 상상하기가 수월했다)

터키 사탕을 요리하는 코미디언 이안무어씨를 상상해보았다.
터키 사탕을 요리하는 코미디언 이안무어씨를 상상해보았다. (실제로 요리때도 정장을 입진 않곘지. 설마.)

팔에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한 시간 반쯤 저으면 믹스가 프라이팬 가운데 걸쭉한 엿처럼 덩어리로 모인다. 끓으면서 튀는 마르멜로에 손과 얼굴을 데고 싶지 않으면 나처럼 장갑과 고글 착용을 권한다.(482p)

따스한 봄날같은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출판사가 있는 남해. 그곳으로 가고있다. 새로운 경치를 찾아나서는 자유인의 느낌을 만끽하자. 게다가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니. 이안 무어씨만큼 좌충우돌(이면 큰일인데)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 30분은 눈을 붙일 수 있겠다. 야호!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