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둘째날 우리의 첫 행선지는 금산 보리암이었다. 전국3대 절이라 기도빨(?)이 좋단다. 하지만 불심(佛心)이 깊지 못한 나는 머리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우선 5,000원이라는 주차비. 문화재 관람 주차비로 본 액수중에 가장 높았다. 아마도 그 얼마를 불러도 아랑곳않고 몰려올 관광객과 불자들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구불 구불한 산길을 올라오다 우리를 놀라게 한 현수막들이 있었다.

‘여기부터 70분 남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은 10분이면 도착이라는데, 무슨 말일까 싶었다. 평소 사람이 많이 몰릴 때엔 주차장 진입만을 위해서 그 지점부터 70분간 대기를 해야한다는 말이었다. 일요일 낮에, 아침에 비까지 내려 관광객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음에 감사해야했다.

15분쯤을 주차장 진입로에서 대기한 후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한 아저씨가 매의 눈으로 주차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파란 조끼와 선글라스를 갖춰입었을 뿐인 시골 아저씨의 풍채였지만, 각잡힌 근무태도 만큼은 007 제임스본드를 방불케 했다. 주차장 입구의 톨게이트(선불!)와 통신하느라 치익 치익 쉴새없이 울려대는 무전기는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빌러 오는 곳인지를 말해주었다.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는 제1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또 마을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 제2주차장까지 가야한다. (물론 보리암은 제2주차장에서 또 산을 타고 꽤 걸어 올라가야 마주할 수 있다.)제2주차장까지 차량을 몰고 올라올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주차를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한다. 그렇다고 제1주차장에서부터 보리암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수행자 외엔 아마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니 이 마을버스는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 사실상 필수인 셈이다.

여튼 이 마을버스의 가격은 1인당 왕복 2천원. 현금만 받는다. 30명 남짓을 태우니까 한 번 왕복에 6만 원이라 치고. 하지만 그쯤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차들을 보고 있자니 계산이 무의미해졌다. 그냥 배가 아플 뿐. 이 미니버스의 운영 주체는 대체 누굴까 궁금해졌다.

여행기를 정리하다 이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보광운수, 금송운수에 대한 기사를 찾았다. 마을버스가 왕복하는 제 1주차장과 제2주차장 사이의 거리도 2.82km구간밖에 안된단다. 30분마다 운행한다곤 했지만, 실제로는 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버스가 가득 차기때문에 실제로는 더 자주 운행할 것이다.

매년 연말정산 때마다 새삼 느끼는, 크리스탈 유리지갑 3인은 배가 아플 뿐이었다. 2.82km란 수치를 알고나니 더 배가 아프다. 에이, 괜히 검색해봤다. 쳇

유리지갑 배앓이 3단 콤보는 보리암 입장료 천원을 현금만으로 받는 데서 완성되었다. 3단 콤보에 기분이 상한 우리 중 하나가, 또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대상도 아니란다.

블록체인이니 비트코인이니  전자증권이니 온갖 기술들로 시끄럽길래 현금없는 사회가 정말 성큼 다가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종교계가 앞장서서 저지하지 않을까. ㅋㅋ

이런 불온한 생각따위 얼른 접고 보리암을 올랐었는데, 어째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는데 이런 생각만 뭉게뭉게 든단 말이냐. 엉엉.

보리암 여행기로 다시 돌아가자.  보리암 입장권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적혀있다.

금산 보리암 입장권
금산 보리암 입장권

관음도량 남해 금산 보리암.

보리암은 남해의 기암을 자랑하는 금산(681m) 정상 남쪽 바로 아래에 있다. 원효스님의 문무왕 3년(663년)에 산이 마치 빛나기에 찾아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님을 친견한 후 산의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초암은 보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는 이곳의 산령의 뜻을 이루게 해준 데 보답코자 보광산을 금산이라하였다고 금산영웅기적비(문화재자료 제 227호)는 전하고 있다. 보광사로 전하던 명칭이 바귄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문헌에는 보리암이라 기록하고 있다. 탑대에 있는 고색창연한 보리암 전3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 74호)은 보리암의 유서를 더해주며 주불전인 보광전은 창건 당시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 전각에 모셔진 관음보살님은 인도 야유타국의 허공주가 모셔왔다고도 전한다. 극락전, 설법전, 의상대, 간성각, 산신각 등의 전각을 중수 중건하면서 부처님을 모시는 당우로 거듭하는 한편 남해를 조망하고 계신 해수관음보살은 그윽한 미소로 찾아오는 불자를 맞이하신다.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의사항1. 보리암은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로서, 문화재 보호법 제 39조에 따라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2. 징수된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사찰의 소중한 문화재를 유지보수하는 데 쓰여지고 있습니다….. (중략)

유의사항 1, 2번이 괜시리 나를 뜨끔하게 하는군. 암. 소중한 문화재 잘 보존해야지… (하지만 여전히 문화재 보존과 재원의 투명한 파악&운영은 별개 문제라고 생각한다. – _-ㅋㅋ)

절벽 아래로 내려가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했다는 선은전이 있지만, 정작 나는 그림을 그리느라 친구들만 아래로 내려보냈다.

 

보리암 풍경
보리암 풍경. 사진 속의 계단을 내려가야 선은전으로 갈수 있다.
바로 이 계단.
바로 이 계단.

태조 이성계는 대업을 이루기 위한 큰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을 곳인데, 나는 쪼잔하게 셈이나 하고 있었다니. 그래도 결국 보리암에 올라 바다를 내려보았던 그 순간, 나도 수백년 전부터 그 곳을 밟았온 이들과 매한가지의 마음으로 경건해졌다. 그리하여 완성한 스케블링.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안개가 끼어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