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허망하게 날아간 센과치히로!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2)

타이베이에 당도했을 즈음은 이미 저녁시간으로 해가 진 뒤였다. 숙소에서 가까운 야시장 한 군데를 잠시 들러 아쉬움을 달랬다.  본격 타이베이 여행은 바로 둘째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

미리 예약해둔 “예스진지” 택시투어의 시작시간은 오전 9시.

택시투어는 대만 근교의 소도시를 기사 겸 가이드와 함께 택시로 여행하는 대표 여행상품이다.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앞글자를 따서 보통 ‘예스진지’라고 하지만, 취향, 예산, 시간에 맞게 행선지를 빼거나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유명한 지우펀에서는 붉은 등에 불이 켜지는 것은 저녁 시간대이므로 , 보통 8~9시간 소요되는 예스진지 투어는 오전 9시 경엔 출발하는 것이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적이다.

 

예스진지 첫 코스 예류. 독특한 돌들을 볼 수 있는 지질공원이다
예스진지 첫 코스 예류. 독특한 돌들을 볼 수 있는 지질공원이다

한국인 고객을 겨냥한 것인지, 카톡으로 성황리 영업중인 대만택시투어 업체가 여럿이었다. 원하는 일정, 코스로 문의를 넣의면 견적을 받아볼 수 있다.  업체마다 여러명의 기사를 보유해서 고객과 매칭해주는 시스템인듯 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기사님께 받은 감동을 후기로 남겨놓는 경우도많기 때문에 쉽게 레퍼런스 체크가 가능하다. (그치만 왠지 어느 기사님과 되더라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사진사처럼 사진을 찍어주며 어느 포인트에서 뭘 해주더라 하는건 약간 서비스 수준이 수렴하지 않나..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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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더웠는데, 예류지질공원 구경 후 택시 기사 아저씨가 밀크티를 사주셨다. 나이스타이밍!

두번 째 행선지인 스펀으로 가는길에, 택시아저씨가 설명해줬다. 한국, 일본 관광객들은 개별 택시 관광을 선호하고 중국인들은 대형 버스로 단체 관광을 많이 한다고. 그러고보니, 예류에서 중국 관광버스가 줄지어 있었던 게 생각났다.

스펀의 명물, 천등날리기
스펀의 명물, 천등날리기

스펀은 기찻길이 지나가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천등날리기가 이 작디 작은 마을을 그리도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던 걸까. 엄마와 나도 우리의 소망을 차곡차곡 네 면 가득히 적어 하늘로 띄워 올렸다. 나중에 안타까웠던 것은, 타이베이의 그 어떤 야시장도 스펀만큼 예쁜 기념품을 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등 미니어처는 정말 예뻤다.

한 시간 남짓한 자유시간동안 그린 스펀. 한 시간에 한 번 지나다니는 기차를 두 번 봤다.

한 시간 남짓한 자유시간동안 그린 스펀. 한 시간에 한 번 지나다니는 기차를 두 번 봤다.

 

진과스 가는 길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음양해.
진과스 가는 길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음양해. 산에서 내려온 광물 때문에 바다색이  저렇게 보인다.

세 번째 행선지인 진과스는 금광업으로 한 때 꽃을 피웠던 마을이다. 황금박물관이 있는 산 중턱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요 녀석이 사람과 금광 캐는 도구를 실어나르지 않았을까.
요 녀석이 사람과 금광 캐는 도구를 실어나르지 않았을까.
진과스의 광부도시락
진과스의 광부도시락

광부도시락. 도시락까지 패키지로 판매하는 메뉴를 시키면 도시락통까지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녀에게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어. 정말로 광부들이 금광 안에서 먹었을런지는 모르겠다.

택시 아저씨가 보여준 아주 심플한 버전의 지우펀 약도
택시 아저씨가 보여준 아주 심플한 버전의 지우펀 약도

이 날 마지막 도착지는 지우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센과 치히로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홍등 가득하고 시끌벅적하며 몽환적인 그 분위기에서 꼭 그림을 한 장 그리고 싶었다. 대만 여행에서 그리겠노라 마음먹었던 게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예스진지 투어 후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가지 않고,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본 후 1박을 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해가 진 이후에 꽃피는 지우펀의 밤거리
해가 진 이후에 꽃피는 지우펀의 밤거리

내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였다. 택시 아저씨가 보여준 약도는 정말 간략버전의 지도였고, 실제로는 엄청 구불구불 골목길의 연속이다.

이름 모를 절에 향도 피우고, 밤까지 무더웠던 열기를 식히고자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식사도 마쳤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그림그릴 포인트를 찾았던 나는, 결국 다시 내가 원하는 포인트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어머니께 부탁해서 함께 다시 계단을 올라 그 포인트를 찾았다.

아메이 찻집. 센과 치히로에 나온 건물의 실제 모델이라나.
아메이 찻집. 센과 치히로에 나온 건물의 실제 모델이라나. 이 사진을 찍은 포인트가 바로 그 문제의 포인트.

다시 찾은 나의 포인트. 가방을 열고 스케치북을 열었는데, 어…라? 필통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야심차게 가방을 싸면서 마지막 순간에 필통을 숙소 책상 위에 두고온 듯 했다.

엄마는 딸내미 소망을 위해 다시 숙소에 다녀오자고 말씀해주셨지만. 다시 지우펀 거리를 벗어나 숙소로 향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우펀에는 그림그리러 나중에 다시 한 번 와야할 운명이구나. 아홉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우펀의 상점들은 이미 반 이상 문이 닫혀 있었다. 남은 상인들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찾아 헤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새 문을 닫고 있다니. (24시간 잠들지 않는 대한민국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구나.)

여행 중에는 상황에 맞게 놓을 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쉬움이 컸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마지막 영업중인 빙수집에서 대만빙수를 먹었(다가 다 녹아서 마셨)다.

그래도 지우펀에서 충분히 놀고 즐긴 우리 모녀는, 아침 일찍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