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엄마 말은 옳다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3)

우리 모녀는 또 하루의 알찬 시간을 위해 새벽 일찍부터 지우펀 숙소를 나섰다. 타이베이 시내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로 향했다. 지우펀이 산 속에 위치한데다, 우리 숙소가 언덕 꽤 아래에 위치했고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땀을 뻘뻘 흘린 상태였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참았다가 하나, 둘, 셋에 내려다본 산 아래 풍경을 맞이한 등산객의 느낌이랄까. 지우펀에서 그렇게 그리고팠던 밤 거리 풍경은 못그렸지만, 여행은 늘 새로운 기회를 선사하는 법.

 

지우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지우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 속 지붕은 우리 숙소 바로 옆에 있던 절이다. 주황색의 기와지붕 끝이 새침하게 뾰족 솟아있고, 각 모서리마다 용, 봉황, 선녀, 도사(?), 장군(?) 등 여러 동상이 멋드러지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간밤의 문닫힌 후의 절. 아침에 저 사잇길 계단을 오른 후 내려다본 풍경을 그렸다.
간밤의 문닫힌 절. 아침에 저 사잇길 계단을 오른 후 내려다본 풍경을 그렸다.

여행 중 대만의 종교에 대해 알아봤었는데, 도교와 불교, 토속신앙이 섞여있다고 했다. 실제로 택시 투어 중 산 중턱 곳곳에 위령비(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모신 조그마한 사당이 모여있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택시 아저씨 말로는 영원히 두는 건 아니고, 몇년만 뒀다가 철거한다고 했다. 우리 모녀는 우리네 공동묘지같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지우펀 거리에서 미리 사둔 간식거리
지우펀 거리에서 미리 사둔 간식거리

어제밤 이른 아침 여정을 대비해 사둔 간식을 먹을까 하고 입맛을 다시며 꺼냈다.

지우펀에서 탄 타이베이행 버스 안. 잘보면 음식섭취 금지, 흡연금지 표시가 있다.
지우펀에서 탄 타이베이행 버스 안. 잘보면 음식섭취 금지, 흡연금지 표시가 있다.

한 입 베어먹으려던 찰나에 발견한 표시. 아차. 대만은 대중교통 이용시에 음식 섭취가 엄격히 금지된다고 했었는데, 싶어 황급히 모른척을 시전하고 슬그머니 가방에 도로 넣었다.

타이베이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는 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다는 옥배추는 전시기간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 모녀가 좋아하는 그림 구경만 실컷 하고 왔다.

사실상 대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 이것 저것 구경을 많이 하고 싶었다. 먹거리로 유명한 융캉제 거리도 구경하고, 더우면 망고 빙수도 먹고, 시원한 버블티도 마시고 싶었건만…(쓰고보니 구경이 아니라 먹고픈 게 많았던 거구만!) 그러나 한 줄기씩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세지기 시작했다.

101
허리를 꺾어야만 전체를 볼 수 있는 101타워. 날씨가 저리도 흐렸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타이베이에서 꼭 그리고팠던 또 하나의 그림을 놓치게 될까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타이베이 101타워가 보이는 야경을, 꼭 보고, 그리고 싶었다.

뉴욕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모두가 떠올리는 뉴욕 풍경 속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벅찬 마음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보는 야경은 기대했던 풍경과 다를 수밖에 없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서는 정작 그 빌딩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실 한 발자국 떨어져야만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상상하는 타이베이의 풍경 속에는 늘 101타워가 있지만, 정작 101 전망대에 오르면 그 상상하는 풍경이 나오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도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101 타워 야경을 보고싶다면, 샹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에 오르는 고생이 필요하다.

대만으로 출발하면서부터, 나는 어머니께 꼭 한 번 저녁 일몰 시간에 맞춰 샹산에 오르자고 했었다. (여행기를 쓰다 보니, 엄마를 잘 모시겠다는 것보다 내 욕심을 앞세웠던 것이 아닌가 반성이 된다. 이런 못난 딸내미) 전날 지우펀의 야경 스케블링을 어이없게 놓쳐버린 것이 더 마음에 걸렸는지, 사실 나는 무리해서라도 저녁에 샹산에 오르고 싶었다.

101타워 89층에 위치한 전망대에 올라서도 나는 샹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101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샹산. 저기를 오르고 싶었다.
101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샹산. 저기를 오르고 싶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딸내미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하고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으니, 하나는 포기를 하자.

결국 그리하여 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타이베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스린야시장과, 한국인을 위한 쇼핑코너를 따로 만들어두기까지 했다는 까르푸에서의 쇼핑을 하기로 결정했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숙소로 향하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스린야시장은 지하철 노선도에서 샹산과 정반대에 위치했기에, 눈앞의 샹산을 두고 견우 직녀 이별하듯 반대편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최대 규모라는, 스린야시장
타이베이 최대 규모라는, 스린야시장

시간은 이미 일몰시간이 가까웠고, 샹산에 있었어야 할 시간인데 싶었다. 하지만 스린야시장이 가까워올수록, 엄마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는 계속하여 내렸고, 이 시간에 비를 맞으며 산길을 올랐다고 생각해봤다. 그리고 문제는 엄마보단 내 쪽에 있었는데, 불편한 신발과 함께한 지난 며칠간의 도보 여행으로 내 두 다리는 꽤 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 덕분에 야시장 거리는 그리 심하게 북적이지 않았다. 가끔씩은 처마 밑에서 보슬비를 피하기도 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그날의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역시, 엄마 말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니까.

 

 

  • 어머님을 모시고 대만여행을 다녀오셨나 보네요 ㅎㅎ
    스케블러님 덕분에 집구석에 앉아서 대만여행을 한 기분이 나네요 ㅋㅋㅋ

    101타워에서 바라본 풍경 또한 장관이네요 ㅋㅋㅋ

    여행중 틈틈히 그림까지 그리시는 스케블러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ㅋㅋ

    • 감사합니다 Korbuddy님 🙂 블로그 덕에 그림도 더 챙겨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 여행을 안갈 때는 예전 여행기를 정리해서 올리고, 새 여행은 그때 그때 올리려구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힘이 많이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