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엄마는 이런 여행자시구나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 (4.끝.)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우리 모녀는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용산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101타워가 멋진 하늘과 함께 아침인사를 해주었다. 샹산에 올라서 보는 야경보다 이런 아침 풍경이 더 희소하지 않을까.

밝아오는 타이베이의 아침
밝아오는 타이베이의 아침
타이베이 마지막 날 아침. 101타워와 밝아오는 하늘
확대해서 본  101타워.

아침잠이 없는 우리 모녀는 알람의 도움 없이도 새벽 일찍 일어났다. 용산사에 대한 기대와, 끝나가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어디엘 가든지 아침 일찍 풍경을 꼭 꼭 챙기는 편이다. 아침의 고요함을 누리고 있자면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하나씩 맛보는 느낌이 든다.

용산사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
용산사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대만에서 꼭 먹어야한다는 온갖 유명한 것(망고빙수, 우육면, 소금커피 등등)들을 어쩌다보니 하나도 먹지 않았었는데, 용산사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85도 소금커피도 맛볼 수 있었다. 단맛과 짠맛을 함께 버무린 ‘단짠’맛이 트렌드라는데, 소금을 의식하고 먹기 때문에 짠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용산사의 문이 열렸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불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대만의 종교는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있는 듯 하지만 여튼)깊은 신자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만 여행객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용산사의 인공 폭포 연못. 가동 전이라 물이 흐르기 전인데, 이끼가 꼭 매생이같다.
용산사의 인공 폭포 연못. 가동 전이라 물이 흐르기 전인데, 이끼가 꼭 매생이같다.

대만의 절에는 점괘를 보는 특이한 방법이 있다. 간밤 스린야시장 안에 이름모를 절에 들어갔다가, 다른 한국인 관광객 한 명이 일행에게 설명해주는 걸 어깨너머로 훔쳐듣고 우리도 따라해보았다.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빌고, 반달모양의 윷같은 걸 두개 던져서 서로 앞/뒤 다른 모양이 나오면 긴 막대기를 뽑고, 한 번 더 반달윷 두개가 앞/뒤가 나오면 그 막대에 쓰인 숫자에 따라 점괘 종이를 뽑는 시스템이다. 소원을 빌 때 신상 정보를 속으로 꼭 외워야하고, 반달윷이 앞/뒤 다른 면이 나오지 않고 앞/앞, 뒤/뒤 같은 면이 나오면 다른 면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한단다. (사실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

아침 6시의 용산사. 불자, 승려들이 줄지어 경을 외는 모습
아침의 용산사. 불자, 승려들이 줄지어 경을 외는 모습

6시를 조금 넘겼을 때였나. 검은색, 갈색의 도포를 걸쳐입은 사람들이 대형을 갖추고 경을 외기 시작했다. 이 진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용산사를 방문하기 좋은 시간이 따로 있다 들었는데, 아침 6시가 그 타이밍 중 하나였다.

건물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지붕의 디테일한 면까지는 여행 중에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용산사에서 이 그림을 그리다가, 펜이 수명을 다했는지 선이 희미해졌다. 보통은 시간을 따로 내어서 지붕 기와 부분을 더 작업하곤 하는데, 이 그림은 어째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자연스레 표현이 된 것 같아 그냥  내비두기로했다. 소 뒷걸음치다 쥐잡았다.

용산사에서의 경건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마친 후 10일이 넘는 시간이 또 훌쩍 흘렀다.

첫 모녀여행. 엄마를 더 잘 알게 되는 기회였다. 가까울수록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 엄마에 대해 참 많이 몰랐던 게 사실이다. 특히나 여행할 때의 엄마는 엄마도, 나도 처음이니까. 이번 여행중에 몇 번씩, 호기심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우펀 버스 정류장에서, 딸내미는 절 지붕이 멋지다며 그림에 꽂혀있는 동안, 우리보다 먼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청년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또, 스린야시장에서 점괘보는 법을 설명해주던 다른 한국인 학생들에게, 본인도 컨닝 좀 하자며 넌지시 말을 거는 모습도 보았다.

평소에 낯선 사람에게도 곧잘 말을 붙이는 내 붙임성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우리 엄마에게서 왔구나.

엄마들은 보통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문득, 엄마라는 이름 속에 묻혀있던 한 인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힘들 때 엄마를 떠올려본다. 기나긴 생을 살아오시고 더 굽이진 굴곡을  겪어오신 엄마는 어떨까. 정말 그냥 위대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뜬금없지만 그렇게 메세지를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돌아온 엄마의 대답.

엄마 : 내 엄마는 더 위대했다.

위대한 우리 엄마와, 하늘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음이 틀림 없는 엄마의 엄마까지, 세상 모든 위대한 엄마들 모두 감사드린다.

  • 많은것을 얻고 오신 여행인것 같네요
    엄마라는 말은 불효자로 만드는 힘이 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생각 만으로도 가슴먹먹해지고 제 자신이 항상 못나보이는 단어인 것 같아요.
    아낌없이 받았던 사랑을 평생동안 갚아나가야 겠습니다ㅠㅠ

    작품중 4번째 승려의 머리는 어떤 형태였나요? 모자인지 헤어스타일인지
    조금 헷갈려서 여쭤봅니다 ㅎ

    • 아 모자는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종교계에 전업으로 종사하시는 승려가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그냥 일반인들이 도포를 걸친 것 같아 보였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