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를 뒤집어쓴 현자 – 발리(2)

스케치북 뒷면에 써둔 그날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본다. 

2013. 8. 5. 월 11AM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현자>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기 위해 급히 길가의 차양 밑으로 들어갔다. 스쿠터를 타고 쌩쌩 달리던 발리인들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니 일동정지!! 하나, 둘 스쿠터에서 내리더니 비옷을 챙겨 입었다. 비옷이 없는 이는 비 피할 곳을 찾아 동분서주 움직였다. 호스텔을 코앞에 두고 비가 쏟아진 터라, 황망한 마음에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비를 피하려고 내가 서있던 차양으로 다가왔다. 아저씨는 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목에는 매연을 조금이라도 덜 들이마시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손수건을 둘러매고 있었다. 나보다 한 계단 아래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부터 시작해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본인의 이야기 보따리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데, 이 아저씨 ㅋㅋㅋ 만능이시다. 엔지니어 전공했다더니 자기가 회사 운영, 부도나는 것까지 다 안다셔서,  컨설턴트냐니까 그것도 맞단다. 왕년에 의대 합격도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공대를 갔고, 지금은 어릴 때 꿈인 medical advice도 한단다. 근데 서핑, 골프까지 가르친다고! 그 와중에 주로 종교활동을 많이 하시는지 spiritual 어쩌구 저쩌구를 많이 강조하셨다. 류시화 시인이 인도여행 중에 만난 막무가내 다짜고짜 현자들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호스텔로 돌아오자마자 그 아저씨를 그렸다. 비가 와서 실망한 내게 색다른 기억을 남겨주었으니~ Thanks, Chris 아저씨! 

길에서 만난 현자
길에서 만난 현자

 

  • 바빠서 도통 방문하지 못한 사이에 새로운 여행글이 업로드 되기 시작하였네요!
    이번 포스트를 통해서
    “여행중 그린 그림 뒤에는 설명을 적어 놓는다는 것” 을 알아냈습니다! ㅋㅋ

    항상 재밋게 잘 보고 있어요!!

    • 에고 거의 한 달이 지났네요~ 여행 준비하고 다녀오느라 블로그에 도통 손을 못댔네요 ^^ 다시 또 새로운 여행기와 그림들 가득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