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

1박 2일간 남해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다랭이마을이었다.

남해여행기를 맺음하는 글에서 주제는, 당연히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언젠가 우연히 우리 셋이서 개설한 단체방 이름을 ‘아이들’이라고 한 후부터, 어쩌다보니 우리는 ‘아이들’이 되었다. 그냥 지은 이름이었는데, 정말 이름대로 ‘아이’같이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번 여행은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고로, 사회생활 때의 고삐는 살짝 풀어도 된다는 말씀. 나는 독일마을에서 독어로 쓰인 간판이나 상표가 보일 때마다, 교환학생 시절 주워배운 되도않는 독일어를 끊임없이 나불댔다. ‘아이들’이 못알아들으니 내맘대로 막 읽어댔다. (독어 능력자가 곁에 있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만 ㅋㅋ) 사실 ‘아이들’도 그걸 다 참고 들어준다기보다 적당히 무시하며 걸러 듣는 것 같았다.

임촌마을에 당도했을 즈음, 나는 또 내맘대로 신조어를 만들어서 떠들고 있었다.

나 : 남해에서 하는 에어비앤비, 완전 “남해어비앤비” 아닙니까?

P : (어이없음을 나타내는 짧은 탄식 + 살짝 측은한 눈빛) 쟤가 기호학을 공부했었어야 하는데. 내가 요즘 이어령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도 보면 온갖 단어들이 조합된 신조어들이 난무하거든….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하시는 P님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감히 이어령님과 비교되었다. 하하하 사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상상이나 연상에 대해 여과없이 말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사전에 양해를 구한대로, 나는 들르는 행선지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한 곳에 멈추어 20분 가량을 그림을 그렸다. 여행에서 일행이 있을 때 가장 신경쓰이고 또 미안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랭이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서둘러 우리는 차를 세우고 전망 좋은 지점을 찾아 나섰다.

다랭이마을을 발견한 첫 전망 포인트에서.
다랭이마을을 발견한 첫 전망 포인트에서.

마지막 행선지인지라 그림 욕심이 나서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기다려주었다.   심플한 버전으로 일러스트처럼 후딱 다 그렸다. 그런데 옆에 서계시던 아저씨 왈

요기는 잘 안보여. 저~짝에 가야 잘보인다.

우잉? 그러고보니 계단식 논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후딱 그림을 마무리짓고 아저씨가 일러준 건너편 좋은 전망대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역시나. 지붕에 꽃 그림을 그려놓은 것은 다랭이 마을의 동화같은 풍경을 완성해준 신의 한 수였다.

남해 다랭이마을, 제일 잘보이는 전망대에서
남해 다랭이마을, 제일 잘보이는 전망대에서
지붕에 꽃이 피는 남해 다랭이마을
지붕에 꽃이 피는 남해 다랭이마을

두번째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아까부터 시원한 커피를 고파했던 다른 ‘아이들’멤버가 신경이 쓰였다.

우리 카페(는 차를 타고 올라가야하는 위치였다)에 있을게. 다 그리고 올라와라 ㅋㅋㅋ

장난스레 저렇게 말해주는 게 좋았다. 어색하게 안괜찮으면서 괜찮은 척 ‘마음껏 그려’하는 가식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했을 것이다.

‘아이들’ 여행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분명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바삐 보내던 중이었는데. 두 명의 우연한 타이밍이 겹쳤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노력을 모아모아 이번 여행을 성사시켰다.

사람들. 참 고맙다 🙂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둘째날 우리의 첫 행선지는 금산 보리암이었다. 전국3대 절이라 기도빨(?)이 좋단다. 하지만 불심(佛心)이 깊지 못한 나는 머리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우선 5,000원이라는 주차비. 문화재 관람 주차비로 본 액수중에 가장 높았다. 아마도 그 얼마를 불러도 아랑곳않고 몰려올 관광객과 불자들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구불 구불한 산길을 올라오다 우리를 놀라게 한 현수막들이 있었다.

‘여기부터 70분 남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은 10분이면 도착이라는데, 무슨 말일까 싶었다. 평소 사람이 많이 몰릴 때엔 주차장 진입만을 위해서 그 지점부터 70분간 대기를 해야한다는 말이었다. 일요일 낮에, 아침에 비까지 내려 관광객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음에 감사해야했다.

15분쯤을 주차장 진입로에서 대기한 후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한 아저씨가 매의 눈으로 주차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파란 조끼와 선글라스를 갖춰입었을 뿐인 시골 아저씨의 풍채였지만, 각잡힌 근무태도 만큼은 007 제임스본드를 방불케 했다. 주차장 입구의 톨게이트(선불!)와 통신하느라 치익 치익 쉴새없이 울려대는 무전기는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빌러 오는 곳인지를 말해주었다.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는 제1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또 마을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 제2주차장까지 가야한다. (물론 보리암은 제2주차장에서 또 산을 타고 꽤 걸어 올라가야 마주할 수 있다.)제2주차장까지 차량을 몰고 올라올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주차를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한다. 그렇다고 제1주차장에서부터 보리암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수행자 외엔 아마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니 이 마을버스는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 사실상 필수인 셈이다.

여튼 이 마을버스의 가격은 1인당 왕복 2천원. 현금만 받는다. 30명 남짓을 태우니까 한 번 왕복에 6만 원이라 치고. 하지만 그쯤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차들을 보고 있자니 계산이 무의미해졌다. 그냥 배가 아플 뿐. 이 미니버스의 운영 주체는 대체 누굴까 궁금해졌다.

여행기를 정리하다 이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보광운수, 금송운수에 대한 기사를 찾았다. 마을버스가 왕복하는 제 1주차장과 제2주차장 사이의 거리도 2.82km구간밖에 안된단다. 30분마다 운행한다곤 했지만, 실제로는 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버스가 가득 차기때문에 실제로는 더 자주 운행할 것이다.

매년 연말정산 때마다 새삼 느끼는, 크리스탈 유리지갑 3인은 배가 아플 뿐이었다. 2.82km란 수치를 알고나니 더 배가 아프다. 에이, 괜히 검색해봤다. 쳇

유리지갑 배앓이 3단 콤보는 보리암 입장료 천원을 현금만으로 받는 데서 완성되었다. 3단 콤보에 기분이 상한 우리 중 하나가, 또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대상도 아니란다.

블록체인이니 비트코인이니  전자증권이니 온갖 기술들로 시끄럽길래 현금없는 사회가 정말 성큼 다가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종교계가 앞장서서 저지하지 않을까. ㅋㅋ

이런 불온한 생각따위 얼른 접고 보리암을 올랐었는데, 어째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는데 이런 생각만 뭉게뭉게 든단 말이냐. 엉엉.

보리암 여행기로 다시 돌아가자.  보리암 입장권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적혀있다.

금산 보리암 입장권
금산 보리암 입장권

관음도량 남해 금산 보리암.

보리암은 남해의 기암을 자랑하는 금산(681m) 정상 남쪽 바로 아래에 있다. 원효스님의 문무왕 3년(663년)에 산이 마치 빛나기에 찾아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님을 친견한 후 산의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초암은 보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는 이곳의 산령의 뜻을 이루게 해준 데 보답코자 보광산을 금산이라하였다고 금산영웅기적비(문화재자료 제 227호)는 전하고 있다. 보광사로 전하던 명칭이 바귄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문헌에는 보리암이라 기록하고 있다. 탑대에 있는 고색창연한 보리암 전3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 74호)은 보리암의 유서를 더해주며 주불전인 보광전은 창건 당시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 전각에 모셔진 관음보살님은 인도 야유타국의 허공주가 모셔왔다고도 전한다. 극락전, 설법전, 의상대, 간성각, 산신각 등의 전각을 중수 중건하면서 부처님을 모시는 당우로 거듭하는 한편 남해를 조망하고 계신 해수관음보살은 그윽한 미소로 찾아오는 불자를 맞이하신다.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의사항1. 보리암은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로서, 문화재 보호법 제 39조에 따라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2. 징수된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사찰의 소중한 문화재를 유지보수하는 데 쓰여지고 있습니다….. (중략)

유의사항 1, 2번이 괜시리 나를 뜨끔하게 하는군. 암. 소중한 문화재 잘 보존해야지… (하지만 여전히 문화재 보존과 재원의 투명한 파악&운영은 별개 문제라고 생각한다. – _-ㅋㅋ)

절벽 아래로 내려가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했다는 선은전이 있지만, 정작 나는 그림을 그리느라 친구들만 아래로 내려보냈다.

 

보리암 풍경
보리암 풍경. 사진 속의 계단을 내려가야 선은전으로 갈수 있다.
바로 이 계단.
바로 이 계단.

태조 이성계는 대업을 이루기 위한 큰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을 곳인데, 나는 쪼잔하게 셈이나 하고 있었다니. 그래도 결국 보리암에 올라 바다를 내려보았던 그 순간, 나도 수백년 전부터 그 곳을 밟았온 이들과 매한가지의 마음으로 경건해졌다. 그리하여 완성한 스케블링.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안개가 끼어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남해+에어비앤비=남해어비앤비? 임촌마을!

급 결정된 남해 일정에 앞서, 그래도 숙박은 미리 예약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 숙소 검색에 돌입했다. 훌쩍 떠나는 배낭여행 느낌으로, 고급 숙소가 아닌 민박이면 충분할 것이라 합의를 보았다.

레이서P(환상적인 운전 실력으로 여행 내내 수고해주셔서 나머지 두 장롱면허자(무려 1종보통 장롱면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가 느낌있는 민박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이름은 바로 ‘임촌마을 206호’

어린왕자 소행성B612호처럼 뭔가 집주인이 부여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화로 예약을 시도해본 P.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받았다.

P : 안녕하세요, 저희 3명 묵을 건데 방이 얼마죠?

할아버지 : 어? 온다꼬? 음…. 얼마 줄라꼬? 일단 와바라. 와서 보고 내라~

읭? ㅋㅋㅋㅋ

P가 ‘임촌마을 206호’를 찾았다던 숙박정보 페이지에 접속해보았다. 남해펜션넷이라는 사이트였다.

아니 이것은!!

nhp
남해펜션넷 > ‘임촌마을’ 검색결과 (개인적으로 직접 모델로 나선 저 할머니 분, 정말 멋지시다 🙂

남는 공간이 있는 방이 있는 집은 죄다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다. 잉여 공간의 활용을 통한 가치 창출이라며 전세계 여행숙박업계에 파란을 몰고온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던가! 대한민국 조그만 마을이 이렇게 잘 실천하고 있다니. 아마도 지자체에서 추진한 것이 아닐까 멋대로 추측해 보았다. 어찌됐든 정말 좋은 지역 경제 활성화 모델이 아닌가! (지금 홈페이지를 보니 그냥 이 업체가 추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임촌마을
해가 뉘엿뉘엿하는 임촌마을 골목

결국 우리는 그냥 걸어 다니며 직접 살펴볼 요량으로 미리 예약을 하진 않았다. 실제로 마을이라고 해도 몇 블럭 사이에 집이 다 모여있어 물어물어 구할만 했다. 이미 한바탕 물놀이를 한 후 오후 느즈막한 시간이었는데, 주인이 없는 집이 많았다. 자기 집 앞을 서성이는 외지인들을 알아챈 스쿠터 청년이 잠깐 멈췄다. 우리가 문의하려 했던 집 아들인 듯 했다. 엄마한테 전화를 해본 후 말했다. (역시나 익숙한 사투리)

“저희가 성수기때만 (민박을) 하거든요. 이쪽 집들은 다 그래요. 저기 바닷가 가까운 쪽 함 가보세요.”

그 스쿠터 청년이 말한 곳은 은모래비치 바로 옆의 조금 더 상업적인 느낌의 민박지구(?)였다. 임촌마을에서 묵어보고 싶었는데.. 하며 조금 아쉬우려던 찰나, 옆집 마당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마늘을 널고 계셨던 한 할머니가 건너편 건물로 가보라고 귀띔해주셨다.

꿈나라 펜션. 별도의 간판까지 달려있는 그 집은,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는 곳들과 달리 외관도 영업용으로 정비된 느낌을 주었다. 5월 말은 아직 은모래비치가 정식으로 피서객들을 맞기 전이라, 상업적 느낌의 숙박업소 외에는 대부분이 민박 영업을 하지 않는 듯했다.

임촌마을 집집마다 붙어있는 민박 표시
임촌마을 집집마다 붙어있는 민박 표시

집집마다 붙어있는 민박 표시. 다 해지고 벗겨져서 자세히 봐도 알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시골인심이란말이 있는 이유가 있지.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시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임촌마을은 상주 은모래비치에 가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아침산책, 이번 여행에서도 놓치지 않을꺼에요. ㅋㅋ 아침산책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그 특별한 느낌때문인지 여행지에서 꼭꼭 챙겨 누리려고 한다. (아침잠이 없는 할매성향 덕택이다 ㅋㅋ)

꿈나라 펜션의 대문
꿈나라 펜션의 대문

왠지 그 전날밤 온수보일러를 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침에 꺼져있던 것은 보일러의 스마트함 덕분이었을까, 외지에서 온 처자들을 걱정한 주인집 할머니의 친절이었을까.  보슬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부터 꿈나라 펜션의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임촌마을의 정체는 여러 간판에서 알아낼 수 있다.
임촌마을의 정체는 여러 간판에서 알아낼 수 있다.

임촌마을 입구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나가다 보니 솟대로 꾸며진 공원도 있었다.

촉촉히 젖은 솟대공원
촉촉히 젖은 솟대공원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은모래비치. 보슬보슬 내리는 비는 한껏 운치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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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소나무들은 한국지리시간에 배운 ‘방풍림’의 전형을 보여준다. 저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 전날 여행친구들과 함께한 바다를 떠올려보았다. 처음 해변가 도로를 따라 저 멀리 보이는 은모래해변을 발견하고는, 세명이 동시에 ‘꺄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은모래 해변에서, 석양.
고요하고 평화로운 은모래 해변에서, 석양.

은모래해변.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석양 즈음의 해변은, 정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반짝했다.

“동해 바다인데 을왕리에서 소리를 따면 어쩌자는 거야!!!!”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소리에 예민한 영화 음향감독으로 분한 문정혁이 외쳤던 대사이다. 은모래해변에 당도해서야, 그 대사를 쓴 작가의 디테일함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바다는 참 익숙한 공간이다. 어딜가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남해의 풍경과 소리는, 분명히 달랐다.  모래사장이 정말 말그대로 끝없이 펼쳐졌고(사실 부산의 모래사장은 주기적으로 모래를 갖다 퍼부어주어야 유지가 된단다), 잔잔한 물결은 바닷물을 넓게 넓게 밀어주어서, 물장구를 치러 꽤 멀리 들어갔는데도 무릎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잔잔한 물결이 밀어다 준 것은 바닷물뿐만이 아니었다. ㅋㅋ

잔잔한 물결이 완성해준 해초 패디큐어.
잔잔한 물결이 완성해준 해초 패디큐어.

전날의 즐거웠던 추억을 곱씹으며, 고즈넉한 은모래해변의 아침을 즐겼다. 내가 여행을 즐기는 방법. 바로 스케블링으로. 호호.

겹겹이 쌓여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씩 하나씩 들어냈다. 빗방울로부터 안전하게 숨어있던 가장 밑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친 줄 알았던 빗방울이 조금씩 다시 떨어지길래 한쪽 어깨에 우산을 걸친 채로 그려야 했다. (얼른 그림을 다 그리고 일어나야했다.)

은모래해변의 아침. 촉촉.
은모래해변의 아침. 촉촉.

여행친구들과 함께할 아침거리를 사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라 아쉬움은 짙어가지만, 그래도 우리 여행의 후반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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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로 출발!

“남해”란 어떤 곳인가?

여태까지는 남해에 놀러간다고 하면, 우리나라 3면을 에워싼 바다- 동해, 서해, 남해- 중 하나인 남해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거제 통영 여수 등을 다 총칭하는 남쪽 바다지역 말이다. 하지만 이번여행을 통해서야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된 것이 있으니, 경상남도 남해군이 엄연히 따로 존재한다는 것. 나는 남해의 남해를 다녀왔다.

남해 독일마을!에 앞서 먼저 찾았던 곳은 바로 옆에 위치한 원예예술촌.

꽃으로 가득한 원예예술촌꽃으로 가득한 원예예술촌

 

남해의 따사로운 기후를 십분 활용하여 꾸며진 아름다운 원예 공원이다. 5월 말이라는 천혜의 시기와 잘 맞아떨어져 형형색색의 꽃밭을 누빌 수 있었다.

그리고 찾은 남해 독일마을. 독일마을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조성된 마을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빨간지붕의 남해 독일마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빨간지붕의 남해 독일마을

남해파독전시관도 둘러보았다. 솔직히 시원한 독일맥주 한 잔이 우리의 목적 전부였지만, ‘파독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30년을 독일에서 살았지만 한국이 그리웠다.’는 문구. 그 시절 독일과 한국간 맺어진 인력 파견 협정문과 근로계약서. 간호사로 근무당시 구입했던 의료도구 등 많은 자료들을 모아서 전시해두었다.

독일로 파견된 누님에게 올리는 한 일병의 편지도 있었는데, 그리움의 애달픈 마음이 한 자 한 자에 꾹꾹 눌러담겨있었다.

베를린 교환학생 시절 현지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난 혼혈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 친구들은 이미 한국어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했거나 어학연수로 꽤 오랜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조금 친해진 후 알게 된 것인데, 독일에서 성장하면서 조금 다른 외모에 대한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인식하냐는 물음에는, (나름의 고민을 했던 티가 역력했지만) 당연히 나고 자란 독일인이라고 인식한다고 대답했다.)

우리 사회는 ‘단일민족’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문화’라는 개념과, 그에 해당하는 이들에 대한 별도의 배려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의미하는 바다. 사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이라도 ‘사회 통념’이란 것에서 벗어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민족이 다르면 오죽할까. 사실 나 역시 머리가 큰 후 내발로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민족, 문화 ‘다양성’과 관련한 피부에 와닿는 경험이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행은 사람의 지평을 넓히는 좋은 기회다. 내가 스스로를 ‘여행자’로 정의하고자 하는 큰 이유는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도끼로 머리를 얻어맞는 정도의 관점의 변화를 겪기도 했다. 머리 속에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차차 글과 그림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우리 사회가 ‘다름’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국적, 빈부, 성별, 나이, 지역, 외모 등. 범위가 너무나도 큰 일이지만 그를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사실 그런 마음을 품고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실천하는 것도 이미 기여하고 있는 일이다. 이 블로그를 정리하는 것도 그를 위한 하나의 점찍기라고 생각한다.

목적 달성!
목적 달성!

독일 교환학생 시절 쥐톨만큼 배운 독어 실력인데, 내가 가장 자주 구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여행중에 독일인을 만날 때마다 저 말을 한다. 그리고 여행하다보면 독일인을 참 많이 만난다.)

 kein Bier vor vier. (No beer before 4pm.)

이 날은 아마 이 룰을 어겼었던 걸로 기억한다. ㅋㅋ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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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대전 역에 정차하겠습니다.

비몽사몽한 채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은 지 한 시간쯤이 지났나보다. 어제 글쟁이 선배와 담소를 나눈 후, 그 어느 때보다도 창작에 대한 욕구가 불타오르고 있다. 마침 기차라는 공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작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뚱아리는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는지 하염없이 하품을 쏟아낸다. (아마 곧 곯아떨어질 예감이 든다.)

나는 지금, 남해로 가고 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거절하기 어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여행 제안이다. (사실 맛있는 음식도 참 좋아하는데, 여행이라면 모름지기 식도락이라는 요소를 꼭 포함하기 때문에 여행이 제일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나의 속성을 꿰뚫어본 귀신같은 여인네들의 꾐에 넘어갔다. 당장 일 주일 후에 반년간 벼뤄온 여행일정이 있고, 주말에 작업해야할 일이 있고.. 라고 하면서 난색을 표하면 뭘하나. 이미 내 손은 출발 집결지인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결제하고 있는 것을.

여행을 떠날 때는 일상에서보다 책을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집중이 잘 된달까. 한 달 전쯤 사두고 재밌게 읽기 시작해 아껴둔(늘 완독을 잘 못해내는 내 독서버릇을 탓해본다.) 책 한 권을 아침 댓바람 여행길에 집어들었다.

영국에서의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영국에서의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영국에서의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부제는 [코미디언 무어씨의 문화충돌 라이프]. [이안무어] 지음, [박상현] 옮김, [남해의봄날] 펴냄.

어딘가에서 읽은 소개글을 읽고 마음이 끌려서 주문한 책이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에는, 우리나라 책답지 않은 가벼운 무게(500페이지에 가까운데도 꽤 가볍다!)와 깔끔한 편집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가벼운 문고판 책 발간이 어렵다고 알고 있기에, 여행길에 오를 때면 늘 외국원서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원서는 책장에서 나의 지적 허영심을 대변해주는 인테리어 소품일 뿐)

스탠드업 코미디를 업으로 하는 모드족 영국 신사 이안 무어(Ian Moore)씨가 프랑스 시골 농장에 정착하여, 발 네개 달린 식구들을 포함한 대가족을 꾸리고 사는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엮어 놓았다. 프랑스인과 영국인이 서로를 미묘하게(아니 어쩌면 대놓고) 꼬집는 특성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뾰로통한 영국신사의 글 솜씨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읽다가 피식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차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잠들어 있어 다행이다.

내가 못 참는 건 항상 똑같은 길로 가는 것이다. 가능하면 멀리 돌아가면서 기어도 바꾸고, 이런저런 교차로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도로나 새로운 경치를 찾아가는 게 좋다. 출장을 많이 다니는 것도 이런 성격과 관련이 있겠지만, 나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흥미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가고싶은 곳에 간다. 나는 자유인이다. (121p)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나도 이런 자유인이고 싶다. 아니 이미 나는 자유인이다. (확언을 해서 그렇다고 해버리자!) 그래서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한 0.5초는 했으려나) 했지만 지금 떠나는 중이겠지.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동대구역에 정차하겠습니다.

(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는데, 그새 한 시간이 또 지났다니 )

기차에 올라서 책을 읽는 도중에야 이 책을 펴낸 곳이 “남해의봄날”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니 또 내가 남해로 가는 중인 건 어찌 알고!

책 맨 마지막 장에 조그맣게 적힌 글귀가 이 출판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책 날개에 적혀진 책과 출판사 소개. 이것만 봐도 봄날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 하다.
책 날개에 적혀진 책과 출판사 소개. 이것만 봐도 봄날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 하다.

도서출판 남해의봄날 로컬북스 – 이웃한 도시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자연과 문화,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독특한 개성을 간직한 크고 작은 도시의 매력, 그리고 지역에 애정을 갖고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해의봄날이 하나씩 찾아내어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직 책은 반절도 못읽었지만, 하품으로 계속 SOS를 보내오는 몸뚱아리를 졸음에서 좀 구제해줘야겠다 싶어서 얼른 떠오른 이미지를 스케치북에 그리기부터 했다. (사실 책에 이미 일러스트가 있어서 상상하기가 수월했다)

터키 사탕을 요리하는 코미디언 이안무어씨를 상상해보았다.
터키 사탕을 요리하는 코미디언 이안무어씨를 상상해보았다. (실제로 요리때도 정장을 입진 않곘지. 설마.)

팔에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한 시간 반쯤 저으면 믹스가 프라이팬 가운데 걸쭉한 엿처럼 덩어리로 모인다. 끓으면서 튀는 마르멜로에 손과 얼굴을 데고 싶지 않으면 나처럼 장갑과 고글 착용을 권한다.(482p)

따스한 봄날같은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출판사가 있는 남해. 그곳으로 가고있다. 새로운 경치를 찾아나서는 자유인의 느낌을 만끽하자. 게다가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니. 이안 무어씨만큼 좌충우돌(이면 큰일인데)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 30분은 눈을 붙일 수 있겠다. 야호!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