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파라다이스 호스텔 – 쿠바(2)

기나긴 비행 끝에 아바나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었다. 택시를 타고 밤길을 가로질러 아바나 올드타운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쿠바여행의 시작과 끝이 되어준 파라다이스 호스텔 마당.
쿠바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파라다이스 호스텔. 저녁과 사뭇 다른 고요한 아침.

혼자 여행을 떠나면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이용을 즐겨하는 편이다. 세계 곳곳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배낭여행의 맛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마음 맞는 여행메이트도 구할 수도 있고, 생생한 여행 꿀팁까지 얻을 수 있다. 

처음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떴을때, 게스트하우스만의 그 자유로움에 취해 한때 게스트하우스 오너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워낙 숙박 시설이 많아지기도 하였고 (공간이 있다면) airbnb를 운영하는 방법도 생겼으므로 그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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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꺾어 돌려가며  세 번의 실패 끝에 힘겹게 담아낸 파노라마 사진

쿠바는 여행지 특성상 민박 형태가 많다. 물론 유명한 사람들이 묵은 사실로 유명한 호텔도 여럿 있지만, 배낭여행객의 옵션 중 호텔은 없었으므로, 재미난 여행친구를 만날 기대로 또 호스텔을 예약했더랬다.  

파라다이스 호스텔의 아주머니는 참 친절하셨다. 우리의 주된 대화 내용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주문이었으므로, 3개월 배운 스페인어의 도움 없이도 영어 단어, 손짓발짓으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 시차 적응이 덜 되어 새벽부터 깨어나 멀뚱히 건물을 구경중인 내게 날씨가 춥다고 처음으로 말을 건네주셨다. 오랜만에 찾아본 사진 속에서 다시 만나는 저 미소가 참 반갑다.  

아침식사를 마련해주신 호스텔 아주머니. 의사소통은 손짓 90프로 스페인어 10프로
아침식사를 마련해주신 호스텔 아주머니. 의사소통은 손짓 반, 스페인어 반

사흘간 아바나에 묵으며 내가 할 일은 함께 다른 도시 여행을 할 친구를 찾는 일이었다.  파라다이스 호스텔은 8일간의 쿠바여행을 시작하는 포인트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매우 적절한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쿠바여행의 시작과 끝을 이 호스텔에서 하는 배낭여행객들이 꽤 많았다.) 다른 여행객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지구상에서 시간이 가장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아바나에서 굳이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는 건 나처럼 시차적응 못한 여행자밖에 없는 것 같았다.

기대되는 다른 여행자들과의 만남은 살짝 미루기로 하고, 아바나의 면면을 살펴보러 길을 나섰다.  

숙박이 가능한 집은 파란 닻 모양의 표시를 달아둔다.
호스텔 입구, 아바나의 명물 올드 카. 숙박이 가능한 집은 파란 닻 모양의 표시를 달아둔다.

2월의 쿠바는 생각보다 추웠다. 사실 나는 한여름을 기대하고 짧은 옷들로 짐의 대부분을 채웠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입었던 후드티와 긴바지, 혹시몰라 챙겼던 긴 스타킹에 신세를 참 많이 졌더랬다. 우리나라랑 계절이 달라 참 다행이었다. 

쿠바에 오긴 왔구나 내가.
쿠바에 오긴 왔구나 내가.

말레꼰 방파제 끄트머리에 사람이 많이 모여있었다. 종교 부흥회 쯤 되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무슨 모임이었는지 전혀 모른다. )

방파제 끝 광장에 모인 사람들. 저 멀리 보이는 모로성.
방파제 끝 광장에 모인 사람들. 저 멀리 보이는 모로성.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쿠바여행의 첫 스케치를 마쳤다. ‘모로’는 바다에서 잘 보이는 큰 바위 쯤을 뜻하는 말이란다.  이제 막 시작하는 나의 쿠바여행도 안전하고 재미있길 기원하면서 수 세기동안 아바나를 지켜온 모로성(모로요새) 그림을 마쳤다. 

아바나 말레꼰에서 본 모로성
아바나 말레꼰 건너로 보이는 모로성(모로 요새)

가자, 쿠바로! – 쿠바(1)

*** 2015년 2월에 다녀온 쿠바여행 이야기입니다. ***

가자, 쿠바로!

나름 여행 좀 다녀봤다 하는 사람들도, ‘쿠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부러움 + 놀람 + 호기심의 눈빛을 가득 보내온다.

쿠바 비냘레스 지역의 담배밭. 이 잎들이 가공된 것이 그 유명한 쿠바산 시가!
쿠바 비냘레스 지역의 담배밭. 이 잎들을 가공하면 그 유명한 쿠바산 시가!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가 사랑한 나라, 공산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나라.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로 경제 개방의 물결이 곧 들이닥칠 나라. 그래서 때가 묻기 전의 희소한 쿠바의 모습을 보고싶었다 따위의 거창한 이유들이 사실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나를 쿠바로 인도한 것은 바로, 사촌동생이다.

나와 세살 터울인 사촌동생은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동생이 교환학생+어학연수차 멕시코에 있는 동안 남미대륙에 꼭 한 번 가겠노라 다짐을 했었다. 스페인어가 필수라는 남미 여행에, 믿음직한 가이드와 함께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날려버릴 내가 아니지.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이과수 폭포 등.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대륙, 남미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있던 찰나, 문제가 생겼다. 멕시코에서 1년 이상을 보낸 동생은 이미 남미대륙 정복을 마친 후였다는 것.

그래서 쿠바.

동생도 나도 안가봤고 둘다 가고싶은 쿠바. 언젠가 한 친구가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알려준, 지상낙원이라는 쿠바.

언제나 그렇듯 여행의 시작은 항공권 결제부터! 설연휴를 이용할 셈으로 약 5개월 전에 미리 항공권부터 결제.

그리고 나서야 쿠바를 갈 이유들이 하나 둘 살이 붙어 갔다.


* 쿠바로 가는 험난한 여정*
– 미국 마이애미에서 쿠바 아바나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이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안다는 그 느낌적 느낌. “가깝지만 먼” 이유로 미국에서 직항으로 입국이 불가했다. 하여 주로 이용하는 루트는 캐나다 or 멕시코를 통한 입국.
– 캐나다에어 이용, 인천 – 도쿄 – 토론토 – 아바나 루트를 이용했다. 순수 비행시간만 18시간, 도쿄에서 8시간, 토론토 2시간 체류시간 포함하면 28시간의 여정이었다.
– 캐나다에어 이용시 쿠바 입국비자는 비행기표값에 포함!

*쿠바 여행자유화(관련기사링크)*

…미국인들은 16일부터 사전 승인을 받을 필요없이 항공표를 직접 예약해 쿠바를 자유롭게 여행 할 수 있게 됐다.

가족 방문, 공무상 방문, 취재, 전문연구, 교육, 종교, 인도적 등 공공활동, 수출입 거래 등 12가지 범주의 방문사유가 있어야 하지만 미국정부나 기관의 사전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쿠바 여행이 사실상 자유화되는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과 쿠바의 하늘길이 열렸으므로, 쿠바까지의 여정도 훨씬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설렘 가득한 나날들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카톡) 사촌동생 : 언니… 나 못가…. 그때 시험…… ㅜ ㅜ

아주 잠깐 패닉할 뻔 하였으나, 사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단 하나?

나는 곧장 스페인어 학원을 찾게된다.

나에게 주어진 3개월의 시간.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고, 한 단어라도 더 알아들으면 여행이 풍성해 질테니까.

고등학교때 스페인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친구들이 시험기간마다 블라블라대던게 생각났다. 아니 라틴어 베이스 언어들은 왜 언어에 웬 성별을 갖다붙여서 외울 게 이리도 많은 걸까.

발랄함으로 우주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초급 전담반 Estrella(에스뜨레야, 별이라는 뜻) 선생님은 스페인어가 정말 배우기 쉬운 언어라고 해주셨다. 뭐, 말씀대로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에 초급만! 1인칭만! 동사원형만! 공부할 거니까 🙂 

여행 다녀온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난 지금. 내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문장 두개.

- No es tuyo, es mío! (니꺼 아니고 내꺼야!라는 뜻. 
다행히 이 문장을 실제로 쓰는(소매치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 Otra Frio! (오뜨라 쁘리오! '다른 냉장고!' 라는 뜻. 
3개월 속성 스페인어 공부의 기쁨을 안겨다 준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어쨌든, 초급 날림 스페인어 3개월짜리 초급 스페인어를 장착한 나의 첫 행선지는 쿠바 아바나.. 로 가기 전 캐나다 토론토…  그 전에 일본 도쿄!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시부야. ‘좀 잘나간다는 학생들이 노는 곳’이미지가 강한 시부야. (그 이미지의 출처는 만화책..ㅋㅋ) 그곳에 가서 일본라멘을 한 그릇 먹겠노라던게 나의 계획이었다. 시부야에 도착한 나는

핫 여기는…. 남포동! 남포동이다!!!!!

너무나 남포동같았던 시부야 거리
너무나 남포동같았던 시부야 거리

한 중 일 3개언어로 표기가 너무 잘 되어있어서… 한국같있다.. 콕 짚어서 말하자면 부산의 남포동이랄까.

기내식도 먹었던 터라 배는 안고팠지만 쿠바여행준비를 도착 당일 숙소 예약 딱 하나만 준비했던 터라, 얼른 카페에서 론니플래닛을 읽고 싶었다.

론리플래닛 쿠바 2013년판. 2015년판도 있다. 적어도2년마다 꾸준히 업데이트 되는 여행자들의 바이블!
나의 론리플래닛 쿠바. 여행자들의 바이블!

쿠바여행책으로 썩 괜찮은 책이 없었다. 영문판 론니플래닛 정도. 아마존 검색결과 2015년판이 최신이었는데, 당장 국내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은 2013년판이었다. 쿠바는 시간이 멈춘 곳이니, 크게 상관이 없었다.  앞으로 더 많이 출간되리라 기대해본다.

역시나 발걸음은 스타벅스로. 메뉴판에 버젓이 쓰여진 숏사이즈 가격들을 보고 속으로 한국스타벅스를 살짝 흘기고 자리에앉았다. (한국 스타벅스엔 숏사이즈 가격을 써놓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후, 슬슬 출출해져서 라멘집을 향해 시부야를 누볐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부야 라멘 맛집’ 정도를 찾아봤음직한데 전혀 그 생각을 하질 못했다. 역시 여행은 사람을 아날로그하게 만들어준단 말이야. 왠지 느낌이 끌렸던 라멘집 도착.

북해도 스타일 라멘집
북해도 스타일 라멘집

나중에 사진을 일본유학생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여기도 맛집이라고 했다. 뿌듯. 

쿠바여행기인데 가는 여정이 참 길다. 

한 젓가락 먹고, 한 부분 그리고, 후루룩, 슥삭슥삭
한 젓가락 먹고, 한 부분 그리고, 후루룩, 슥삭슥삭

발 가는데로 찾아간 시부야 라멘 맛집에서 라멘을 기다리며 그린 쿠바여행의 첫 그림. 서빙되기 전에 다 그릴 생각이었는데, 라멘이 생각보다 빨리나왔다. 요리하는 아재님도 계속 바삐 요리하시느라 등짝의 글자가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나도 덩달아 라멘 한 젓가락 후루룩, 스케치 한 부분 슥삭슥삭을 번갈아 하며 식사를 마쳤다.

 

 

아, 엄마는 이런 여행자시구나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 (4.끝.)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우리 모녀는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용산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101타워가 멋진 하늘과 함께 아침인사를 해주었다. 샹산에 올라서 보는 야경보다 이런 아침 풍경이 더 희소하지 않을까.

밝아오는 타이베이의 아침
밝아오는 타이베이의 아침
타이베이 마지막 날 아침. 101타워와 밝아오는 하늘
확대해서 본  101타워.

아침잠이 없는 우리 모녀는 알람의 도움 없이도 새벽 일찍 일어났다. 용산사에 대한 기대와, 끝나가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어디엘 가든지 아침 일찍 풍경을 꼭 꼭 챙기는 편이다. 아침의 고요함을 누리고 있자면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하나씩 맛보는 느낌이 든다.

용산사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
용산사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대만에서 꼭 먹어야한다는 온갖 유명한 것(망고빙수, 우육면, 소금커피 등등)들을 어쩌다보니 하나도 먹지 않았었는데, 용산사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85도 소금커피도 맛볼 수 있었다. 단맛과 짠맛을 함께 버무린 ‘단짠’맛이 트렌드라는데, 소금을 의식하고 먹기 때문에 짠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용산사의 문이 열렸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불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대만의 종교는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있는 듯 하지만 여튼)깊은 신자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만 여행객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용산사의 인공 폭포 연못. 가동 전이라 물이 흐르기 전인데, 이끼가 꼭 매생이같다.
용산사의 인공 폭포 연못. 가동 전이라 물이 흐르기 전인데, 이끼가 꼭 매생이같다.

대만의 절에는 점괘를 보는 특이한 방법이 있다. 간밤 스린야시장 안에 이름모를 절에 들어갔다가, 다른 한국인 관광객 한 명이 일행에게 설명해주는 걸 어깨너머로 훔쳐듣고 우리도 따라해보았다.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빌고, 반달모양의 윷같은 걸 두개 던져서 서로 앞/뒤 다른 모양이 나오면 긴 막대기를 뽑고, 한 번 더 반달윷 두개가 앞/뒤가 나오면 그 막대에 쓰인 숫자에 따라 점괘 종이를 뽑는 시스템이다. 소원을 빌 때 신상 정보를 속으로 꼭 외워야하고, 반달윷이 앞/뒤 다른 면이 나오지 않고 앞/앞, 뒤/뒤 같은 면이 나오면 다른 면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한단다. (사실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

아침 6시의 용산사. 불자, 승려들이 줄지어 경을 외는 모습
아침의 용산사. 불자, 승려들이 줄지어 경을 외는 모습

6시를 조금 넘겼을 때였나. 검은색, 갈색의 도포를 걸쳐입은 사람들이 대형을 갖추고 경을 외기 시작했다. 이 진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용산사를 방문하기 좋은 시간이 따로 있다 들었는데, 아침 6시가 그 타이밍 중 하나였다.

건물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지붕의 디테일한 면까지는 여행 중에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용산사에서 이 그림을 그리다가, 펜이 수명을 다했는지 선이 희미해졌다. 보통은 시간을 따로 내어서 지붕 기와 부분을 더 작업하곤 하는데, 이 그림은 어째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자연스레 표현이 된 것 같아 그냥  내비두기로했다. 소 뒷걸음치다 쥐잡았다.

용산사에서의 경건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마친 후 10일이 넘는 시간이 또 훌쩍 흘렀다.

첫 모녀여행. 엄마를 더 잘 알게 되는 기회였다. 가까울수록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 엄마에 대해 참 많이 몰랐던 게 사실이다. 특히나 여행할 때의 엄마는 엄마도, 나도 처음이니까. 이번 여행중에 몇 번씩, 호기심 가득한 소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우펀 버스 정류장에서, 딸내미는 절 지붕이 멋지다며 그림에 꽂혀있는 동안, 우리보다 먼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청년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또, 스린야시장에서 점괘보는 법을 설명해주던 다른 한국인 학생들에게, 본인도 컨닝 좀 하자며 넌지시 말을 거는 모습도 보았다.

평소에 낯선 사람에게도 곧잘 말을 붙이는 내 붙임성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우리 엄마에게서 왔구나.

엄마들은 보통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문득, 엄마라는 이름 속에 묻혀있던 한 인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힘들 때 엄마를 떠올려본다. 기나긴 생을 살아오시고 더 굽이진 굴곡을  겪어오신 엄마는 어떨까. 정말 그냥 위대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뜬금없지만 그렇게 메세지를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돌아온 엄마의 대답.

엄마 : 내 엄마는 더 위대했다.

위대한 우리 엄마와, 하늘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음이 틀림 없는 엄마의 엄마까지, 세상 모든 위대한 엄마들 모두 감사드린다.

역시나, 엄마 말은 옳다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3)

우리 모녀는 또 하루의 알찬 시간을 위해 새벽 일찍부터 지우펀 숙소를 나섰다. 타이베이 시내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로 향했다. 지우펀이 산 속에 위치한데다, 우리 숙소가 언덕 꽤 아래에 위치했고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땀을 뻘뻘 흘린 상태였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참았다가 하나, 둘, 셋에 내려다본 산 아래 풍경을 맞이한 등산객의 느낌이랄까. 지우펀에서 그렇게 그리고팠던 밤 거리 풍경은 못그렸지만, 여행은 늘 새로운 기회를 선사하는 법.

 

지우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지우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 속 지붕은 우리 숙소 바로 옆에 있던 절이다. 주황색의 기와지붕 끝이 새침하게 뾰족 솟아있고, 각 모서리마다 용, 봉황, 선녀, 도사(?), 장군(?) 등 여러 동상이 멋드러지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간밤의 문닫힌 후의 절. 아침에 저 사잇길 계단을 오른 후 내려다본 풍경을 그렸다.
간밤의 문닫힌 절. 아침에 저 사잇길 계단을 오른 후 내려다본 풍경을 그렸다.

여행 중 대만의 종교에 대해 알아봤었는데, 도교와 불교, 토속신앙이 섞여있다고 했다. 실제로 택시 투어 중 산 중턱 곳곳에 위령비(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모신 조그마한 사당이 모여있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택시 아저씨 말로는 영원히 두는 건 아니고, 몇년만 뒀다가 철거한다고 했다. 우리 모녀는 우리네 공동묘지같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지우펀 거리에서 미리 사둔 간식거리
지우펀 거리에서 미리 사둔 간식거리

어제밤 이른 아침 여정을 대비해 사둔 간식을 먹을까 하고 입맛을 다시며 꺼냈다.

지우펀에서 탄 타이베이행 버스 안. 잘보면 음식섭취 금지, 흡연금지 표시가 있다.
지우펀에서 탄 타이베이행 버스 안. 잘보면 음식섭취 금지, 흡연금지 표시가 있다.

한 입 베어먹으려던 찰나에 발견한 표시. 아차. 대만은 대중교통 이용시에 음식 섭취가 엄격히 금지된다고 했었는데, 싶어 황급히 모른척을 시전하고 슬그머니 가방에 도로 넣었다.

타이베이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는 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다는 옥배추는 전시기간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 모녀가 좋아하는 그림 구경만 실컷 하고 왔다.

사실상 대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 이것 저것 구경을 많이 하고 싶었다. 먹거리로 유명한 융캉제 거리도 구경하고, 더우면 망고 빙수도 먹고, 시원한 버블티도 마시고 싶었건만…(쓰고보니 구경이 아니라 먹고픈 게 많았던 거구만!) 그러나 한 줄기씩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세지기 시작했다.

101
허리를 꺾어야만 전체를 볼 수 있는 101타워. 날씨가 저리도 흐렸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타이베이에서 꼭 그리고팠던 또 하나의 그림을 놓치게 될까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타이베이 101타워가 보이는 야경을, 꼭 보고, 그리고 싶었다.

뉴욕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모두가 떠올리는 뉴욕 풍경 속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벅찬 마음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보는 야경은 기대했던 풍경과 다를 수밖에 없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서는 정작 그 빌딩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실 한 발자국 떨어져야만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상상하는 타이베이의 풍경 속에는 늘 101타워가 있지만, 정작 101 전망대에 오르면 그 상상하는 풍경이 나오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도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101 타워 야경을 보고싶다면, 샹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에 오르는 고생이 필요하다.

대만으로 출발하면서부터, 나는 어머니께 꼭 한 번 저녁 일몰 시간에 맞춰 샹산에 오르자고 했었다. (여행기를 쓰다 보니, 엄마를 잘 모시겠다는 것보다 내 욕심을 앞세웠던 것이 아닌가 반성이 된다. 이런 못난 딸내미) 전날 지우펀의 야경 스케블링을 어이없게 놓쳐버린 것이 더 마음에 걸렸는지, 사실 나는 무리해서라도 저녁에 샹산에 오르고 싶었다.

101타워 89층에 위치한 전망대에 올라서도 나는 샹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101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샹산. 저기를 오르고 싶었다.
101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샹산. 저기를 오르고 싶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는 딸내미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하고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으니, 하나는 포기를 하자.

결국 그리하여 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타이베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스린야시장과, 한국인을 위한 쇼핑코너를 따로 만들어두기까지 했다는 까르푸에서의 쇼핑을 하기로 결정했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숙소로 향하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스린야시장은 지하철 노선도에서 샹산과 정반대에 위치했기에, 눈앞의 샹산을 두고 견우 직녀 이별하듯 반대편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최대 규모라는, 스린야시장
타이베이 최대 규모라는, 스린야시장

시간은 이미 일몰시간이 가까웠고, 샹산에 있었어야 할 시간인데 싶었다. 하지만 스린야시장이 가까워올수록, 엄마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는 계속하여 내렸고, 이 시간에 비를 맞으며 산길을 올랐다고 생각해봤다. 그리고 문제는 엄마보단 내 쪽에 있었는데, 불편한 신발과 함께한 지난 며칠간의 도보 여행으로 내 두 다리는 꽤 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 덕분에 야시장 거리는 그리 심하게 북적이지 않았다. 가끔씩은 처마 밑에서 보슬비를 피하기도 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그날의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역시, 엄마 말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니까.

 

 

아, 허망하게 날아간 센과치히로!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2)

타이베이에 당도했을 즈음은 이미 저녁시간으로 해가 진 뒤였다. 숙소에서 가까운 야시장 한 군데를 잠시 들러 아쉬움을 달랬다.  본격 타이베이 여행은 바로 둘째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

미리 예약해둔 “예스진지” 택시투어의 시작시간은 오전 9시.

택시투어는 대만 근교의 소도시를 기사 겸 가이드와 함께 택시로 여행하는 대표 여행상품이다.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앞글자를 따서 보통 ‘예스진지’라고 하지만, 취향, 예산, 시간에 맞게 행선지를 빼거나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유명한 지우펀에서는 붉은 등에 불이 켜지는 것은 저녁 시간대이므로 , 보통 8~9시간 소요되는 예스진지 투어는 오전 9시 경엔 출발하는 것이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적이다.

 

예스진지 첫 코스 예류. 독특한 돌들을 볼 수 있는 지질공원이다
예스진지 첫 코스 예류. 독특한 돌들을 볼 수 있는 지질공원이다

한국인 고객을 겨냥한 것인지, 카톡으로 성황리 영업중인 대만택시투어 업체가 여럿이었다. 원하는 일정, 코스로 문의를 넣의면 견적을 받아볼 수 있다.  업체마다 여러명의 기사를 보유해서 고객과 매칭해주는 시스템인듯 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기사님께 받은 감동을 후기로 남겨놓는 경우도많기 때문에 쉽게 레퍼런스 체크가 가능하다. (그치만 왠지 어느 기사님과 되더라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사진사처럼 사진을 찍어주며 어느 포인트에서 뭘 해주더라 하는건 약간 서비스 수준이 수렴하지 않나..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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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더웠는데, 예류지질공원 구경 후 택시 기사 아저씨가 밀크티를 사주셨다. 나이스타이밍!

두번 째 행선지인 스펀으로 가는길에, 택시아저씨가 설명해줬다. 한국, 일본 관광객들은 개별 택시 관광을 선호하고 중국인들은 대형 버스로 단체 관광을 많이 한다고. 그러고보니, 예류에서 중국 관광버스가 줄지어 있었던 게 생각났다.

스펀의 명물, 천등날리기
스펀의 명물, 천등날리기

스펀은 기찻길이 지나가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천등날리기가 이 작디 작은 마을을 그리도 유명하게 만들어주었던 걸까. 엄마와 나도 우리의 소망을 차곡차곡 네 면 가득히 적어 하늘로 띄워 올렸다. 나중에 안타까웠던 것은, 타이베이의 그 어떤 야시장도 스펀만큼 예쁜 기념품을 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등 미니어처는 정말 예뻤다.

한 시간 남짓한 자유시간동안 그린 스펀. 한 시간에 한 번 지나다니는 기차를 두 번 봤다.

한 시간 남짓한 자유시간동안 그린 스펀. 한 시간에 한 번 지나다니는 기차를 두 번 봤다.

 

진과스 가는 길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음양해.
진과스 가는 길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음양해. 산에서 내려온 광물 때문에 바다색이  저렇게 보인다.

세 번째 행선지인 진과스는 금광업으로 한 때 꽃을 피웠던 마을이다. 황금박물관이 있는 산 중턱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요 녀석이 사람과 금광 캐는 도구를 실어나르지 않았을까.
요 녀석이 사람과 금광 캐는 도구를 실어나르지 않았을까.
진과스의 광부도시락
진과스의 광부도시락

광부도시락. 도시락까지 패키지로 판매하는 메뉴를 시키면 도시락통까지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녀에게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어. 정말로 광부들이 금광 안에서 먹었을런지는 모르겠다.

택시 아저씨가 보여준 아주 심플한 버전의 지우펀 약도
택시 아저씨가 보여준 아주 심플한 버전의 지우펀 약도

이 날 마지막 도착지는 지우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센과 치히로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홍등 가득하고 시끌벅적하며 몽환적인 그 분위기에서 꼭 그림을 한 장 그리고 싶었다. 대만 여행에서 그리겠노라 마음먹었던 게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예스진지 투어 후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가지 않고,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본 후 1박을 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해가 진 이후에 꽃피는 지우펀의 밤거리
해가 진 이후에 꽃피는 지우펀의 밤거리

내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였다. 택시 아저씨가 보여준 약도는 정말 간략버전의 지도였고, 실제로는 엄청 구불구불 골목길의 연속이다.

이름 모를 절에 향도 피우고, 밤까지 무더웠던 열기를 식히고자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식사도 마쳤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그림그릴 포인트를 찾았던 나는, 결국 다시 내가 원하는 포인트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어머니께 부탁해서 함께 다시 계단을 올라 그 포인트를 찾았다.

아메이 찻집. 센과 치히로에 나온 건물의 실제 모델이라나.
아메이 찻집. 센과 치히로에 나온 건물의 실제 모델이라나. 이 사진을 찍은 포인트가 바로 그 문제의 포인트.

다시 찾은 나의 포인트. 가방을 열고 스케치북을 열었는데, 어…라? 필통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야심차게 가방을 싸면서 마지막 순간에 필통을 숙소 책상 위에 두고온 듯 했다.

엄마는 딸내미 소망을 위해 다시 숙소에 다녀오자고 말씀해주셨지만. 다시 지우펀 거리를 벗어나 숙소로 향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우펀에는 그림그리러 나중에 다시 한 번 와야할 운명이구나. 아홉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우펀의 상점들은 이미 반 이상 문이 닫혀 있었다. 남은 상인들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찾아 헤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새 문을 닫고 있다니. (24시간 잠들지 않는 대한민국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구나.)

여행 중에는 상황에 맞게 놓을 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쉬움이 컸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마지막 영업중인 빙수집에서 대만빙수를 먹었(다가 다 녹아서 마셨)다.

그래도 지우펀에서 충분히 놀고 즐긴 우리 모녀는, 아침 일찍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헉! 대만여행에 비자가 필요했던가?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1)

2016년 6월 3일~ 6월 6일. 내게는 역사적인 3박 4일이었다.

모처럼의 연휴를 활용해, 3박 4일간 어머니를 모시고 대만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제법 해외여행 노하우를 쌓았다는 딸내미와는 다르게, 이번 여행은 어머니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진작에 어머니를 모시고 바다를 건너고 싶었었는데, 마음같지 않은 세상의 타이밍은 올해에서야 첫 모녀 해외여행을 성사시켜 주었다.

엄마는 출발 몇 개월 전, 처음으로 여권을 만드셨다. 소녀같은 우리 엄마, 얼마나 설레어하셨을지. 구청에 여권을 신청하러 가셨을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떳다 떳다 비행기
떳다 떳다 비행기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참 설레고 기대가 되는 이벤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에 있어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나는 우리 엄마가 최고의 여행메이트가 될 것이란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의 취미 또한 그림그리기이다. 모전여전인걸까.엄마는 몇년 전 동네 문화원의 미술강좌를 수강하시면서 본격 미술취미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셨다. 전공자의 길을 일찌감치 때려쳤던 딸내미는, 차마 내다버리지 못하고 보관중이던 갖은 화구로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보냈다.

엄마에겐 작업실도 있다. 바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우리집 베란다. 멋드러지게 펼쳐진 이젤 옆으로 물감, 캔버스, 붓통 등 온갖 화구들을 다 갖춘 엄마의 작업실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 특유의 물감 냄새가 스며있다.

그림그리는 우리 엄마
그림그리는 우리 엄마. 그림 그리시는 고운 모습을 지켜보다가 몰래 그렸다.

어릴 적 미술학원을 나름 전문적으로 다닌다고 설쳤던 나인데, 그때의 나는 비교올리지도 못할 정도의 포스를 풍기신다. (엄마는 늘 취미반일 뿐이라며 아니라고 하시지만) 수채화, 유화 습작들이 쌓여있는 그 공간은 엄마의 손길이 가득한 정말 멋진 공간이다. 때론 과감하게 색을 내는 붓터치를 보자면, 그리고 몇 장씩 쌓여있는 같은 그림의 습작들을 보자면,  입시 미술의 틀 안에서 놀았던 (같은 그림은 지겨워서 절대 두번 못그리는 성격의) 나는 부끄러워질 뿐었다.

다시 여행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엄마는 여행 중에 그림을 그리느라 한참을 멈춰있을 딸내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주실 수 있는 분이다. 어쩌면 같이 그림을 그리실지도. 언젠가 유럽 모처의 안개낀 호숫가 마을로 함께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러 가고 싶다.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가기도 전에 이런 소망들부터 뭉게뭉게 피어났다. 언젠간 가겠지. 믿는다, 나의 실행력)

여튼 첫 여행이니만큼,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게 그리 멀지 않은 대만 타이베이로 첫 행선지를 정했다. 그리고 나의 제1의 목표는, 엄마를 편하고 즐겁게 모시는 것. 하여, 나는 미리부터 나름의 경험치를 십분 활용해 야심찬 준비를 하였다.

엄마는 나만 믿고 몸만 오시면 된다고 큰 소리를 떵떵 쳤었더랬다. 척척 알아서 가이드까지 다 하는 딸이 되리라고. 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다 아는 노하우들이지만, 괜시리 엄마 앞에서 ‘아이고 우리딸 최고다’하는 칭찬을 듣고 싶었었던 것 같다. 미리 환전해둔 돈 공항에서 찾기, 현지에서 쓸 어댑터 통신사에서 빌리기, 자동출입국심사 등록시켜드리기 등 노련한 여행자의 자태를 뽐내며 공항을 누볐다.

우리가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한 탓인지, 체크인 시작 시간이 생각보다 늦길래 한참을 공항 구경을 하고 다시 체크인을 카운터로 갔다. 그랬더니 이미 인산인해로 북적이는 카운터 앞. 별것 아니지만 나는 또 여행자 신공이랍시고 웹체크인을 시도했고, 전용 카운터에 대기없이 짐을 부치고, 여전히 대기중이었던 많은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쳐 입국심사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엄마가 감탄하시고, 나는 뿌듯할 수 있었던 소소한 포인트 하나 추가!

작년 가을 처음으로 ‘공항 라운지’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신. 세. 계.란 이런것이구나. 항공권, 숙박 예약 후 처음으로 준비했던 건 바로 어머니를 위한 공항 라운지용 카드발급. 지인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폭풍검색으로 검증을 한 후 가족카드가 발급되는 종류로,  라운지 전용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 두었다.

출국전, 인천공항에서만 3개의 라운지를 돌았다.
출국전, 여유가 넘쳤던 우리는 인천공항에서만 3개의 라운지를 돌았다.

공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 모녀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곤히 잠을 청했다. (심지어 나는 이륙도 하기 전에 잠들었다.) 그리고 나온 비행기 기내식. 사실 하늘 위에서 먹는다는 특별한 점 하나 빼고는 음식 자체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아주 특별한 그 점 하나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법이다. 미리 주문해둔 스페셜 밀로 다른 메뉴를 받아내면서 또 엄마 감탄시키기 한번 더 성공.

비행기하면 기내식!
비행기하면 기내식!

‘해외여행 노하우 많은 멋진 딸’ 놀이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승무원이 나눠준 대만 입국신고서, 당연히 엄마는 내게 작성을 위임했고 나는 또 자랑스레 맡겨만 달라며 으쓱했다. 하지만 나를 당황케 한 대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자.

비자 종류와 번호를 쓰라고?

응?

응??

어라????

항공권, 호텔, 현지에서 이용할 투어, 기념품, 방문할 장소, 라운지 신용카드, 환전, 콘센트 등 그 수많은 걸 준비하고 기획하면서 어째서 나는 한번도 ‘비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여권파워 세계 2위라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로서, 무비자 여행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당연히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 국가나 동남아 어딘가라면 차라리 안심했을텐데, 상해에 갔을 때 별도의 비자를 미리 발급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팽팽돌아가는 머리 속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대만에 내렸는데 비자 때문에 입국 거부를 당하면 어찌되지? 나야 그렇다 치는데 엄마는 어쩐다? 아 왜 네이버에 ‘대만 비자’ 이 네 글자를 검색해볼 생각을 못했지, 다른 사람들은 다 발급 받았나? 필요한 거 맞을까?

강심장 우리 엄마는 덤덤해 보였다. 뭘 어찌하든 늘 믿어주는 우리 엄마의 스타일일까. 당황하는 딸 옆에서 당황을 거들어보았자 해결되는 건 없다는 지혜를 터득한 어머니의 위엄이었을까.

나도 다시 차분히 생각을 시작했다.

대만 비자가 필요했다면 내가 무수히 드나들었던 대만여행카페나, 안내책자에 관련 정보가 없을 턱이 없었겠지. 아무도 비자에 대한 말이 없었단 말씀. 즉,  대만도 무비자가 맞을거야!

착륙 후 공항 와이파이 신호를 잡자 마자 검색해본 결과,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대만을 관광목적으로 방문 시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단다. 예상은 했지만 안도의 한숨.

그제서야 뭔가 탁! 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랑하는 엄마랑 즐겁게 여행을 하고싶었고, 엄마의 첫 여행을 위해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긴장을 하고 있었구나. 정작 엄마는 몇번이고 무리할 필요 없다고 나를 다독여 주셨는데. 실제로 엄마는 가고싶은 것, 하고싶은 것에 대해 재차 묻는 내게 간단히 대답하셨었다.

“101타워 이런 사람많은 데 안가도 된다”

“망고빙수 먹고 야시장? 그림 구경이나 좀 했으면 좋겠다”

모녀여행의 초입에서, 나도 모르게 바짝 힘이 들어갔던 어깨를 잠시 내려놓게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랑 나랑, 그저 즐겁고 함께하는 게 좋은 여행이 되기를.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싸우는 일 없기를!!!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

1박 2일간 남해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다랭이마을이었다.

남해여행기를 맺음하는 글에서 주제는, 당연히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언젠가 우연히 우리 셋이서 개설한 단체방 이름을 ‘아이들’이라고 한 후부터, 어쩌다보니 우리는 ‘아이들’이 되었다. 그냥 지은 이름이었는데, 정말 이름대로 ‘아이’같이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번 여행은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고로, 사회생활 때의 고삐는 살짝 풀어도 된다는 말씀. 나는 독일마을에서 독어로 쓰인 간판이나 상표가 보일 때마다, 교환학생 시절 주워배운 되도않는 독일어를 끊임없이 나불댔다. ‘아이들’이 못알아들으니 내맘대로 막 읽어댔다. (독어 능력자가 곁에 있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겠지만 ㅋㅋ) 사실 ‘아이들’도 그걸 다 참고 들어준다기보다 적당히 무시하며 걸러 듣는 것 같았다.

임촌마을에 당도했을 즈음, 나는 또 내맘대로 신조어를 만들어서 떠들고 있었다.

나 : 남해에서 하는 에어비앤비, 완전 “남해어비앤비” 아닙니까?

P : (어이없음을 나타내는 짧은 탄식 + 살짝 측은한 눈빛) 쟤가 기호학을 공부했었어야 하는데. 내가 요즘 이어령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도 보면 온갖 단어들이 조합된 신조어들이 난무하거든….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하시는 P님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감히 이어령님과 비교되었다. 하하하 사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상상이나 연상에 대해 여과없이 말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사전에 양해를 구한대로, 나는 들르는 행선지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한 곳에 멈추어 20분 가량을 그림을 그렸다. 여행에서 일행이 있을 때 가장 신경쓰이고 또 미안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랭이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서둘러 우리는 차를 세우고 전망 좋은 지점을 찾아 나섰다.

다랭이마을을 발견한 첫 전망 포인트에서.
다랭이마을을 발견한 첫 전망 포인트에서.

마지막 행선지인지라 그림 욕심이 나서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기다려주었다.   심플한 버전으로 일러스트처럼 후딱 다 그렸다. 그런데 옆에 서계시던 아저씨 왈

요기는 잘 안보여. 저~짝에 가야 잘보인다.

우잉? 그러고보니 계단식 논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후딱 그림을 마무리짓고 아저씨가 일러준 건너편 좋은 전망대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역시나. 지붕에 꽃 그림을 그려놓은 것은 다랭이 마을의 동화같은 풍경을 완성해준 신의 한 수였다.

남해 다랭이마을, 제일 잘보이는 전망대에서
남해 다랭이마을, 제일 잘보이는 전망대에서
지붕에 꽃이 피는 남해 다랭이마을
지붕에 꽃이 피는 남해 다랭이마을

두번째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아까부터 시원한 커피를 고파했던 다른 ‘아이들’멤버가 신경이 쓰였다.

우리 카페(는 차를 타고 올라가야하는 위치였다)에 있을게. 다 그리고 올라와라 ㅋㅋㅋ

장난스레 저렇게 말해주는 게 좋았다. 어색하게 안괜찮으면서 괜찮은 척 ‘마음껏 그려’하는 가식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했을 것이다.

‘아이들’ 여행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분명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바삐 보내던 중이었는데. 두 명의 우연한 타이밍이 겹쳤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노력을 모아모아 이번 여행을 성사시켰다.

사람들. 참 고맙다 🙂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둘째날 우리의 첫 행선지는 금산 보리암이었다. 전국3대 절이라 기도빨(?)이 좋단다. 하지만 불심(佛心)이 깊지 못한 나는 머리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우선 5,000원이라는 주차비. 문화재 관람 주차비로 본 액수중에 가장 높았다. 아마도 그 얼마를 불러도 아랑곳않고 몰려올 관광객과 불자들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구불 구불한 산길을 올라오다 우리를 놀라게 한 현수막들이 있었다.

‘여기부터 70분 남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은 10분이면 도착이라는데, 무슨 말일까 싶었다. 평소 사람이 많이 몰릴 때엔 주차장 진입만을 위해서 그 지점부터 70분간 대기를 해야한다는 말이었다. 일요일 낮에, 아침에 비까지 내려 관광객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음에 감사해야했다.

15분쯤을 주차장 진입로에서 대기한 후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한 아저씨가 매의 눈으로 주차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파란 조끼와 선글라스를 갖춰입었을 뿐인 시골 아저씨의 풍채였지만, 각잡힌 근무태도 만큼은 007 제임스본드를 방불케 했다. 주차장 입구의 톨게이트(선불!)와 통신하느라 치익 치익 쉴새없이 울려대는 무전기는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빌러 오는 곳인지를 말해주었다.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는 제1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또 마을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 제2주차장까지 가야한다. (물론 보리암은 제2주차장에서 또 산을 타고 꽤 걸어 올라가야 마주할 수 있다.)제2주차장까지 차량을 몰고 올라올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주차를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한다. 그렇다고 제1주차장에서부터 보리암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수행자 외엔 아마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니 이 마을버스는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 사실상 필수인 셈이다.

여튼 이 마을버스의 가격은 1인당 왕복 2천원. 현금만 받는다. 30명 남짓을 태우니까 한 번 왕복에 6만 원이라 치고. 하지만 그쯤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차들을 보고 있자니 계산이 무의미해졌다. 그냥 배가 아플 뿐. 이 미니버스의 운영 주체는 대체 누굴까 궁금해졌다.

여행기를 정리하다 이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보광운수, 금송운수에 대한 기사를 찾았다. 마을버스가 왕복하는 제 1주차장과 제2주차장 사이의 거리도 2.82km구간밖에 안된단다. 30분마다 운행한다곤 했지만, 실제로는 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버스가 가득 차기때문에 실제로는 더 자주 운행할 것이다.

매년 연말정산 때마다 새삼 느끼는, 크리스탈 유리지갑 3인은 배가 아플 뿐이었다. 2.82km란 수치를 알고나니 더 배가 아프다. 에이, 괜히 검색해봤다. 쳇

유리지갑 배앓이 3단 콤보는 보리암 입장료 천원을 현금만으로 받는 데서 완성되었다. 3단 콤보에 기분이 상한 우리 중 하나가, 또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대상도 아니란다.

블록체인이니 비트코인이니  전자증권이니 온갖 기술들로 시끄럽길래 현금없는 사회가 정말 성큼 다가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종교계가 앞장서서 저지하지 않을까. ㅋㅋ

이런 불온한 생각따위 얼른 접고 보리암을 올랐었는데, 어째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는데 이런 생각만 뭉게뭉게 든단 말이냐. 엉엉.

보리암 여행기로 다시 돌아가자.  보리암 입장권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적혀있다.

금산 보리암 입장권
금산 보리암 입장권

관음도량 남해 금산 보리암.

보리암은 남해의 기암을 자랑하는 금산(681m) 정상 남쪽 바로 아래에 있다. 원효스님의 문무왕 3년(663년)에 산이 마치 빛나기에 찾아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님을 친견한 후 산의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초암은 보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는 이곳의 산령의 뜻을 이루게 해준 데 보답코자 보광산을 금산이라하였다고 금산영웅기적비(문화재자료 제 227호)는 전하고 있다. 보광사로 전하던 명칭이 바귄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문헌에는 보리암이라 기록하고 있다. 탑대에 있는 고색창연한 보리암 전3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 74호)은 보리암의 유서를 더해주며 주불전인 보광전은 창건 당시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 전각에 모셔진 관음보살님은 인도 야유타국의 허공주가 모셔왔다고도 전한다. 극락전, 설법전, 의상대, 간성각, 산신각 등의 전각을 중수 중건하면서 부처님을 모시는 당우로 거듭하는 한편 남해를 조망하고 계신 해수관음보살은 그윽한 미소로 찾아오는 불자를 맞이하신다.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의사항1. 보리암은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로서, 문화재 보호법 제 39조에 따라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2. 징수된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사찰의 소중한 문화재를 유지보수하는 데 쓰여지고 있습니다….. (중략)

유의사항 1, 2번이 괜시리 나를 뜨끔하게 하는군. 암. 소중한 문화재 잘 보존해야지… (하지만 여전히 문화재 보존과 재원의 투명한 파악&운영은 별개 문제라고 생각한다. – _-ㅋㅋ)

절벽 아래로 내려가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했다는 선은전이 있지만, 정작 나는 그림을 그리느라 친구들만 아래로 내려보냈다.

 

보리암 풍경
보리암 풍경. 사진 속의 계단을 내려가야 선은전으로 갈수 있다.
바로 이 계단.
바로 이 계단.

태조 이성계는 대업을 이루기 위한 큰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을 곳인데, 나는 쪼잔하게 셈이나 하고 있었다니. 그래도 결국 보리암에 올라 바다를 내려보았던 그 순간, 나도 수백년 전부터 그 곳을 밟았온 이들과 매한가지의 마음으로 경건해졌다. 그리하여 완성한 스케블링.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안개가 끼어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스케블러의 남해여행 시리즈

‘이안 무어’씨도 부추겨주는, 남해의 유혹 – 경남 남해(1)

 

남해 독일마을에서 반짝반짝 – 경남 남해(2)

남해의 에어비앤비, 임촌마을 – 경남 남해(3)

금산 보리암에서의 배앓이 – 경남 남해(4)

다랭이마을, 감동의 ‘아이들’ – 경남 남해(5.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