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기억으로 남기를 – 쿠바(8.끝.)

 

뜨리니다드의 평화로운 아침
뜨리니다드의 평화로운 아침

뜨리니다드를 떠나는 날, 쿠바여행의 끝이 성큼 다가온 게 느껴져서인지 아쉬움에 일찍 잠에서 깼다. 이른 아침의 산책은 언제나처럼 숨겨진 보석같은 풍경을 선사해준다.

다시 아바나로 향했다. 기나긴 택시 합승 라이드가 또 시작되었다. 사실 뜨리니다드에 도착한 날 바로 버스터미널에서 아바나행 버스를 예약하려 했으나,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는 정도로 그렇게 허탕을 치고 나오는찰나,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거래를 제안해왔다. 역시 걱정없이 여행이 가능한 쿠바라니까.  

아바나까지 가는 길 심심하지 않게 다른 여행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기사아저씨랑 조수석에 앉은 언니가 스페인어로 대화를 했는지 싸웠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그 구경도 재밌었다.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친구 앨리스와 여행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받았다. 어디까지 가냐, 아바나엔 어디에 묵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또 한번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각자 묵는 숙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째 묘사가 비슷하다. 파라다이스 호스텔! 이름처럼 여행자의 천국이긴 한가보다. 이렇게 쉽사리 아바나에서 마지막을 함께할 여행동무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아바나 골목 골목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왜이렇게 정감이 가는걸까.
아바나 골목 골목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왜이렇게 정감이 가는걸까.
현지 식당의 메뉴와 가격표. 현지통화로 작성되어 있다.
현지 식당의 메뉴와 가격표. 현지 통화로 작성되어 있다. 25페소 = 1 USD. 완전 싸다. 

스페인어 능력자인 앨리스 덕에 마지막 날은 현지인처럼 소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쿠바를 떠나기 직전에야 쿠바의 현지 물가를 제대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 쿠바 여행 만세!

 

큰 터미널 창고를 개조한 주말 시장
큰 터미널 창고를 개조한 주말 시장

쿠바여행을 기념할 물건들을 사기위해, 시장을 찾았다. 정열적인 색감을 사용하는 쿠바 예술가들의 작품 구경도 실컷했다.

신선한 코코넛의 꼭지를 따서 한 모금 먹은 후에, 1달러를 더 내면 빈 공간만큼 럼주를 넣어준다. 럼코코가 또 하나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발이 아프면 인력거를. 현지 통화로 지불하면 더 싸다.
발이 아프면 인력거를. 현지 통화로 지불하면 더 싸다.

 한참을 돌아다녀서 다리가 너무 아파, 우리는 인력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앨리스의 멋진 흥정능력으로 처음 부른 외국인화폐 기준가격보다 싸게 현지통화로 이용 가능했다. 쿠바여행때 스페인어는 정말 좋은 치트키이구나.

모로성에서 열리는 저녁 포탄 발포 이벤트
모로성에서 열리는 저녁 포탄 발포 이벤트

 

 앨리스가 불꽃놀이가 열린다며, 마지막 밤을 기리기 위해 모로성을 가자고 제안해왔다. 알고보니 불꽃놀이가 아니라 대포 발포 정도였지만, 우리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같이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행진을 해서 나름 멋졋다. 가장 재밌었던 건, 우리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가능했던 무료입장이었다 ㅋㅋ

호스텔 벽에 새겨두고 온 글귀
호스텔 벽에 새겨두고 온 글귀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쿠바여행.

꽁꽁 얼어붙은 토론토를 지나
꽁꽁 얼어붙은 토론토를 지나

 

꽁꽁 얼어붙은 토론토를 지나, 마지막 경유지였던 일본에서 잔돈까지 탈탈 털어 산 럼주 두병을 빼앗기는 해프닝도 있었고.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펙타클했던 여행이었다. 

다시 또 가야지. 

 

알록달록한 로망 성취 – 쿠바(7)

별다른 준비 하나 없이 훌쩍 떠나온 쿠바여행에서, 단 하나 꼬옥 하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있었다. 뜨리니다드에서 그림그리기. 사실 이 여행 전까지는 늘 단색 펜화만 그렸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뜨리니다드 사진 한 장이 결심을 부추겼다. 여기는 꼭 색깔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어릴 적 욕심부려 사두었던 36색 색연필을 찾아내어 짐가방에 담았다. 

 

Playa Larga로부터 뜨리니다드까지 이동한 개인택시
Playa Larga로부터 뜨리니다드까지는 개인택시를 이용했다. 합승 필수! ㅋㅋ
뜨리니다드까지, 달리고 또 달려요
뜨리니다드까지, 달리고 또 달려요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리고 싶었던 뜨리니다드의 풍경
직접 보고, 그리고 싶었던 뜨리니다드의 풍경이 두 눈 앞에!
쿠바여행의 로망이었던, 색연필화 완성 :)
쿠바여행의 로망이었던, 색연필화 완성 🙂

쿠바의 웬만한 도시마다 있다는 쿠바의 핫플레이스 까사 데라 무지카. (Casa de la Musica, ‘음악의 집’) 뜨리니다드의 광장에도 있다. 아바나의 까사델라무지카는 (입장해보진 않았지만 겉에서 봤을 때에는) 나이트 클럽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뜨리니다드 지점(?)은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었다.

모두가 모이는 뜨리니다드 광장의 까사델라무지카 :)
모두가 모이는 뜨리니다드 광장의 까사델라무지카 🙂

낮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와 낮술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인데, 그 진가는 해가 진 후에 확인할 수 있다. 

 

빠뜨릴 수 없는, 모히또 한 잔!
빠뜨릴 수 없는, 모히또 한 잔!
살사, 살사!
밤에는 모두 모여 살사 파티, 살사!

아니 이 관광객들은 어찌나 다들 춤을 잘 추는 것인지. 한 스텝 하시는 분들은, 쿠바사람 외지사람 구분없이 음악에 맞추어 흥을 즐긴다. 까사델라무지카에서 고용된 사람으로 추측되는 살사 전문가들도 몇명 있어, 구경하는 초보자들에게도 춤을 권하고는 한다. 흰 모자를 쓴 친절한 쿠바노 아저씨가 내게도 기회를 주셨지만, 뜨리니다드에서 속성 살사 두 시간을 배운 게 전부였던 나는 스텝이 많이 꼬여 죄송할 따름이었다.

 

날씨가 추운 날에는 아무리 까사델라 무지카라도 황량
날씨가 추운 날에는 아무리 까사델라 무지카라도 황량
새벽녘, 무대(?)가 끝나고 난 뒤.
새벽녘, 무대(?)가 끝나고 난 뒤. 청소부 아저씨의 부지런한 빗질로 새로운 하루의 영업을 준비중인 까사델라무지카 🙂
해질녘 풍경이 특히나 매혹적인 뜨리니다드.
해질녘 풍경이 특히나 매혹적인 뜨리니다드.
잘란의 안내로 찾아간 현지 길거리 식당.
잘란의 안내로 찾아간 현지 길거리 식당.

프랑스인2, 한국인1, 중국인1 으로 이루어진 외국인 무리가 길가에서 음식을 먹고 있으니, 지나가는 현지인 모두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갔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가득했던 뜨리니다드 여행을 마치고 나니, 쿠바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Under the Sea = A whole new world ! – 쿠바(6)

Playa Larga에 묵은 이유!!

그 이유는 바로 바로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위해서였다. 아바나 호스텔에서 처음 만나 쿠바 여행을 함께 한 잘란이 알고보니 수년간 다이빙을 즐겨온 어드밴스 다이버였던 것!

나도 그녀를 따라 Playa Larga행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이런 즉흥성이 주는 뜻밖의 경험이야말로 자유여행의 꽃이라 생각한다.

물 속 세계라고는 금영노래방 반주기의 배경으로만 접했었고, 그 화면 속의 다이버들을 보고도 전문가들의 세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스쿠버다이빙은 내 인생에 없던 단어였다. 잘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와 멋지다,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도 전문가의 인솔 하에 체험해볼수 있는 ‘체험 다이빙’이 있다는 걸 알고는 냉큼 그럼 나도 가겠노라 질러버렸다. 그래서 뜨리니다드를 가기 전 작은 마을에 내려, 또 택시를 합승하여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이 Playa Larga였다.

도착한 날 오후의 날씨가 험악했던 터라, 다음날 과연 다이빙이 가능할 것인가가 걱정이 되었다. 전체 쿠바 여정 중 날씨가 가장 좋지 못했던 날이었다.

폭풍이 올것만 같았던 걱정가득한 바다
폭풍이 올것만 같았던 걱정가득한 바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 새벽에 깨자 마자 확인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깨끗하게 개어 있었고, 고즈넉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까꿍 :)
까꿍 🙂

미리 헤수스 아저씨를 통해 예약해둔 다이빙 업체에서 우리를 태우러 왔고, 미니버스를 타고 다이빙 포인트인 Playa Giron까지로 향하는 길에 다이빙 관련 주의사항과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함께 체험다이빙을 하는 친구들이 유경험자라 많은 조언을 청해 들을 수 있었다. 

다이빙 샵!
다이빙 샵!

다이빙 샵에서, 놀랍게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바로 아바나 대성당 스케치 때 만났던 독일인 루돌프 아저씨. 루돌프 아저씨도 꽤 오랜 경력의 다이버라시며 본인의 장비를 보여주셨다. 멋지게 늙는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싶었다.  

보인다, 푸르른 바다!
Playa Giron의 푸르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 속의 세상은 난생 처음보는 새로운 세계였다. 내가 아는 지상의 세상보다 훨씬 더 넓고 신비롭고 무궁무진한 세상이 펼쳐졌다.

다이빙이 익숙한 사람들이야 화려한 산호도 없고 물고기도 그리 많지 않았던 카리브해의 작은 마을가, 그것도 볼게 좀 있다는 수심 15-30미터에 훨씬 못미치는 수심 5미터의 그 영역에 이렇게 감탄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 체험 다이빙은 정말 경이로움 그자체였다.

다른 팀이 다이빙 포인트로 향하는 모습.
다른 팀이 다이빙 포인트로 향하는 모습. 보통 배를 타고 나가서 점프해서 입수하는데, 여기는 장비를 메고 찬찬히 걸어서 입수해 들어가는 게 특이했다.

내 호흡도, 세상의 흐름도 모두가 느려지는 듯한 물 속에서 조그마한 물고기들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체험다이빙이아니라 깊은곳까지 다녀온 잘란에게, 이런 신기한 경험에 날 데려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재차 인사를 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물속에서 만났던 친구들 기억을 더듬어 기록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물속에서 만났던 친구들 기억을 더듬어 기록했다

내 첫 다이빙 장소였던 Playa Giron에는 특이한 지형이 있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난다는 호수(brackish water)였는데, 실제 여기로 입수를 하면 동굴 다이빙이 가능하다. 사실인진 모르겠으나 그 동굴은 바다까지 이어져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입수해보니 따뜻한 바닷물과, 차가운 민물이 섞여서 어떤 곳은 따뜻했다가 또 조금만 움직이면 시리도록 춥기도 했다. 신기한 천연 풀장인데 물이 정말 깨끗해서 육안으로 다이버들이 깊이 잠수하는 불빛을 꽤 오래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신기한 천연풀장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신기한 천연풀장

실력이 되지 않아서 저 아름다운 천연풀장에서는 물장구만 치고 놀 수 밖에 없었으나,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저 곳에서 동굴 다이빙을 시도해보고 싶다.

육안으로도 물고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육안으로도 물고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 이 때의 경험이 씨앗이 되어, 4개월 후 나는 다이빙 라이센스 취득을 해냈다. ***

조금 더 쿠바스러운 곳으로 – 쿠바(5)

쿠바여행객이라면 꼭 한번 체험해봐야 할 것이 바로 “까사”라고 불리는 민박이다. (casa :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 파란색 닻 모양의 마크를 달고 있는 집들은 모두 숙박업을 한다고 봐도 되는데, 특히 관광지로 이름이 난 곳이라면 말 그대로 ‘길에 널려있다’할 정도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굳이 미리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도 마음 편히 쿠바를 찾을 수 있는 이유다. (사실 미리 예약을 하려고 해도 온라인 예약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 더 많긴 하겠지만 ㅋㅋ)

숙박이 가능한 집은 파란 닻 모양의 표시를 달아둔다.
숙박이 가능한 집은 닻 모양의 표시를 달아둔다.

경험상 내가 묵어본 까사에서는 여행객에게 주로 침대가 2~3개 딸린 큰 방을 제공한다. 일행이 있다면 독채처럼 쓸 수 있고, 아니라 하더라도 혼자서 큰 방을 독차지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숙박도 해결하고, 쿠바인들의 삶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기에 쿠바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체험 요소로 꼽힌다. 나 또한 원래는 전체 일정을 까사에서 묵고 싶었으나, 까사를 이용하면 애초에 함께 떠나온 일행이 아니고서야 숙소에서 새 친구를 만나 사귈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방이 아무리 넓고 좋아도 혼자서는 너무 심심하지 않겠는가. 혼자 여행객에게 아바나 호스텔이 중요한 이유이다. (작은 도시일수록 호스텔 같은 대형(?) 숙박업소가 잘 없다.)

하지만 아바나 파라다이스 호스텔에서 꼬박 이틀을 보내는 동안에도, 나와 동선이 비슷한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바나에서 묵는 동안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이 이미 여행을 끝나고 돌아가는 여정에 있는 여행객들이었다. 혼자서라도 길을 떠날까 하고 고민을 슬슬 하던 차에, 나와 비슷한 루트를 하루쯤 먼저 밟을 예정인 중국인 언니 ‘잘란’과 연이 닿았다. 잘됐다 싶어 같이 여행다니자고 제안을 했고, 흔쾌히 수락한 그녀는 비냘레스에서 본인이 묵을 예정인 까사 주소를 남기고 먼저 떠났다.

잘란이 남기고 간 비냘레스 까사 주소. 이렇게 여행자들끼리 까사 정보를 교환한다.
잘란이 남기고 간 비냘레스 까사 주소. 이렇게 여행자들끼리 까사 정보를 교환한다.

이틑날, 호스텔 할머니를 통해 미리 예약해둔 개인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비냘레스. 비옥한 토지와 신기한 지형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담배로 만든 시가가 특히!) 잘란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한나절의 트래킹 정도로 비냘레스는 만족하고 다음날 바로 라르가 해변(Playa Larga, 플라야 라르가)로 함께 떠났다.

한 손엔 물통, 한 손엔 시가를 든 가이드와 함께한 비냘레스 트레킹
한 손엔 물통, 한 손엔 시가를 든 가이드와 함께한 비냘레스 트레킹
비냘레스의 비옥한 황토에서 자라고 있는 담배잎. 요게 바로 쿠바산 시가의 비밀이 아닐까
비냘레스의 비옥한 황토에서 자라고 있는 담배잎. 요게 바로 쿠바산 시가의 비밀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집주인과 가장 교류가 많았던 곳이 Playa Larga이다. 그래서 체류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가장 쿠바스러운 곳으로 기억한다.

아바나에서는 무리 중에 스페인어를 잘하는 여행동무가 적어도 한명은 늘 있던 터라, 나의 broken Español을 써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까사 주인인 헤수스 아저씨는 영어를 하지 않는 분이셨고, 잘란은 스페인어 1개월차, 나는 3개월차였기에 이 까사에서는 내멋대로 마구 시도해볼 수 있어서 재미가 쏠쏠했다. 재미난 상황도 있었다. 한 번은 잘란이 물을 찾느라 냉장고를 열었다. (동네가 워낙 작아서 슈퍼마켓이 따로 없었고, 각 까사에서 물, 콜라 등 음료를 팔았다.) 그런데 그 냉장고는 관광객 판매용이 아니라 집주인들이 쓰는 냉장고였다. 당황한 잘란에게, 헤수스 아저씨는 생각나지 않는 단어와 몸짓으로 설명하려 안간힘을 쓰고 계셨다. 그 때 내가 외쳤던 말이 바로 ‘Otra Frio!’ (다른 냉장고!)였다. 나의 외침을 듣고 헤수스 아저씨의 얼굴에 웃음 꽃이 활짝 폈고, 잘란은 시원한 물을 사먹을 수 있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에피소드인데, 그 상황이 너무 재밌고 웃겨서 아직도 웃음이 난다. 그리고 여행 후 홀랑 다 까먹어버린 3개월 속성 스페인어인데, 어째 저 문장만은 에피소드와 함께 뚜렷하게 남아있다. 아마 평생 못잊을 단어가 될 것 같다.

라르가 해변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던 중에 그린 그림. 마을이 참 정겨웠다.
라르가 해변에서 한가로이 저녁 산책을 하던 중에 그린 그림. 조그만 해변가 마을이 참 정겨웠다.

여행 중에 쿠바만의 독특한 숙박 시스템인 까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 기회가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바를 종합해 보면, 어느 도시에나 까사가 넘쳐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쿠바의 보통 수준에서 월급이 몇십 불 수준이라고 했을 때, 까사의 하루 수입(1박에 인당 최저 10달러~20달러 선)이 현지 물가로 치면 어마어마한 가격인 셈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화폐의 차이에서부터 큰 이윤을 남기는 셈이니, 다들 달려들고 싶을 수밖에 없다. 까사 뿐만 아니라 택시, 트라이시클도 마찬가지다. 아바나에 갓 도착한, 현지 물가에 감이 없는 외국인들이 택시 기사에게 가장 좋은 타겟이 된다. 그렇다고해서 엄청난 바가지를 쓴 느낌이 드는가하면, 여전히 저렴하게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았다. 현지인 물가와 관광객 물가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 하다. 혹자는 쿠바 사람들의 꿈이 트라이시클 마련 – 택시용 자동차 마련 – 까사용 집 마련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까사 영업을 하기 위해선 인증된 마크를 달아야 하고, 그 말인즉슨 국가가 관리를 받게 된다. 실제로 까사에 투숙할땐 늘 장부에 인적사항을 기입했다. 그러니 까사 주인들이 국가의 관리를 피해 진짜 알짜배기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투숙객을 상대로 한 식사 판매이다. 묵는 숙소에서 직접 나를 위한 특식을 요리해주는 셈이니, 호텔로 치면 룸서비스인 셈 아닌가. ‘이 까사 밥이 참 잘나와!’는 까사 추천의 큰 이유가 된다. 가격도 저녁이 9~10불, 아침은 4불 정도였다. 

헤수스 아저씨 까사의 명함. 여행 중 다른 여행자에게 추천한다며 넘겨주느라 사진으로 남겼다.
헤수스 아저씨네 까사 명함. 여행 중 다른 여행자에게 강력 추천한다며 넘겨주느라 사진으로 남겼다.

아침, 저녁식사를 까사에서 할 것인지를 미리 말해두면, 원하는 시간에 거한 한 상을 받아볼 수 있다.(이렇게 거한 상에 익숙하다가 그렇지 않은 까사를 가게 되면 내심 실망하게 된다.) 내가 playa larga 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랍스터 중 고를 수 있게 해주었고, 실제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준 식사에 놀랐다.

헤수스 아저씨가 차려주신 귀엽고 애정가득한 아침상 >0<
헤수스 아저씨가 차려주신 귀엽고 애정가득한 아침상 >0<

현지사람들과 가장 가까울 수 있었던 라르가 해변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원래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전혀 계획에도 없었던 곳이었다. 나의 쿠바 여행 메이트 잘란을 따라 즉흥적으로 찾게 된 마을, 그 진짜 목적은 다음 편에… 🙂

아바나가 선물해준 사람들 – 쿠바(4)

혼자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쿠바여행. 비운만큼 채워진다고, 가볍게 떠나온 내게 쿠바는 많은 사람들을 선물해 주었다.

새로 사귄 많은 이들이 파라다이스 호스텔의 여행자 친구들이었다. 이미 무리지어 함께 여행온 친구들도, 나와 같은 홀로 여행객들도 많았다.

헤밍웨이 생가. 사냥을 좋아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에
아바나 근교의 헤밍웨이 생가. 사냥을 좋아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에

독일 뮌헨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헤밍웨이 생가를 방문했다. 베를린에서의 경험이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되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Kein Bier Vor Vier’는 독일인들을 빵 터뜨리기 좋은 문장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가 키웠던 개들의 무덤이란다. 뒤에 보이는 배는,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이 된 어부에게 헤밍웨이가 선물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키웠던 개들의 무덤이란다. 뒤에 보이는 배는,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이 된 어부에게 헤밍웨이가 선물했다고 한다

토론토에서 온 캐나다 친구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기도 했다. 토론토와 아바나는 지도상으로 경도가 거의 비슷하다. 비행기로 4시간쯤 아래로 내려오면 아바나가 나오는지라, 특가상품이 많단다. 토론토 4인조는 방학을 맞아 발견한 특가 상품으로 즉흥 여행을 온 차였다.

토론토 4인방과 여기 저기 도시 구경을 하다가, 넉살 좋은 쿠바노가 길안내를 자청하며 말을 걸어왔다. 알고보니 진짜 쿠바노는 아니었고, 아프리카 가봉에서 유학온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고 구경중이던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그와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잘 안다는 바로 우리를 인도했다.

쿠바여행객에겐 여행자로서 오픈 마인드를 가질 것보다, 경계심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다니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나 또한 숱한 쿠바여행기를 통해 동정심을 내세우는 구걸에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틀간 아바나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들이 슬그머니 그 경계심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우리 5인방은 바텐더와 그 가봉 의사 몫의 모히토까지 다 지불하게 된 상황에서야 아차 당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러고 난 이후에도, 그 남자는 우리를 졸졸 따라오며 돈을 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즐겁기만 했던 여행자의 마음이 상처를 입었던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현지인에 낚여서 반강제로 들어갔던 바. 미끼를 물었었다. ㅠ ㅠ
현지인에 낚여서 반강제로 들어갔던 바. 미끼를 물었었다. ㅠ ㅠ

묘한 매력으로 버릴 것 하나없는 쿠바여행에서, 단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으로 여행객들이 꼽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인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일부 현지인들이다. 쿠바에는 외국인 전용 화폐가 따로 있는데, 내가 여행 중일 때는 1외국인 화폐 = 24~25현지화폐 정도로 물가 격차가 컸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댓가로 받는 월급이, 관광객들이 쉽게 소비하는 하루치 돈에도 미치지 못하니 당연하게 생겨난 불편함이 아닐까.

그 전날 아바나 시내 지리를 익힐 겸 거닐다 대성당 광장에 다다랐을때였다. 파란 하늘로부터 쬐어 내려오는 햇빛과 그를 의연히 받아내는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에 반해, 광장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아바나 대성당
아바나 대성당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꼭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는 그런 관심을 썩 반가워하는 터라 그 상황을 꽤나 즐긴다. 그 날도 독일에서 오신 큰 키의 ‘루돌프’ 아저씨가 관심을 건네오셨다. 그리고 어린 꾸바노 한명이 또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알고보니 그 친구도 그림을 그리는 친구였다. 돌돌 말았던 종이를 펼쳐내니, 며칠째 쌓아올린 성실한 선으로 대성당의 모습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게르만족 독일인 루돌프 아저씨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나와 꾸바노 소년 곁에 짝다리를 짚고 서계셨다. 안그래도 큰 사람이 더 커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꾸바노 소년이 쿠바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면, 우리가 질문하는 양상이었다. 주된 주제는 쿠바인들의 가난한 삶이었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안 그 소년은 때로는 살짝 격앙되기도 했다. 사실 대화하는 동안 그 꾸바노 소년이 내게 돈을 구걸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 짐짓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불편한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어색한 기분으로 자리를 떴다. 여행지에서 동호인을 만난 기쁨이 괜시리 퇴색되는 것 같아 기분이 울적해졌었다. 

대화 내내 내가 받은 느낌은, 그의 말이 참 두서가 없었고 주의가 산만했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영어실력이라기보단, 삶의 치부를 외지인들에게 말하는 데서 오는 생래적 수치심이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여행 후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난 지금, 선뜻 그 소년에게 ‘그림 참 멋지다! 나한테 팔아!’ 하지 못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된다. 그림을 그리다 눈을 마주쳤을 때 소년의 눈동자가 떨렸었고, 나와 눈이 마주칠라 싶으면 시선을 이내 곧 돌리곤 했었는데… 그 소년이 대화 말미에 돈을 언급한건 그런 망설임과 주저함을 이겨낸 결과일텐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간난아이를 무기삼아 분유값을 달라고 당당히 말하던 꾸바나와는 달랐었는데.

꽃다운 나이에 자신이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환경에 대해 고민을 했을 그 꾸바노 소년.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사는 동갑내기 여행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때때로 구겨지는 마음을 추스려가며 어른이 되어갈 그 친구가 참 마음에 남는다.

저녁에 파라다이스 호스텔 루프탑 바에서 여행자들끼리 어울리며, 서로가 보고 겪은 쿠바에 대해 나누었다. 독일무리, 캐나다무리, 호주, 이탈리아 친구 함께 모여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젊은 세대의 일자리 부족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현상임을 생생하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간밤, 이야기 꽃이 만개했던 파라다이스 호스텔 루프탑
간밤, 이야기 꽃이 만개했던 파라다이스 호스텔 루프탑

여행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내 일상에 특별한 순간들을 수놓아 주지만, 늘 반짝거리지만은 않는다. 때때로 여행자의 마음엔 생채기가 남기도 한다. 쿠바 여행이 유독 좋았던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빛나는 부분만 카메라에 담기 바쁜, 그런 여행을 나도 가끔씩 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는 여행. 이런 여행이 주는 여운이 더 깊고 짙다. 

아직도 아바나가 준 선물들은 내 스케치북에, 머리속에, 그리고 마음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시간이 멈춘 도시, 아바나 – 쿠바(3)

쿠바에도 인터넷을 사용할 방법은 있다. 주요 호텔 로비에서 시간당 얼마를 주면 연결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또 현지 통신사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방법이야 있겠지.

하지만 이왕 시간이 멈춘 곳에 간 김에,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것은 사실 쿠바여행에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불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평소엔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지내보니, 평소의 상태가 ‘과연결’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골목길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참 예뻤다.
하늘은 골목길 사이로
여행자에게 필요한 건 날씨운.
난간에 걸린 빨래처럼 그저 늘어져도 좋을 날씨

여행 시작 즈음, 비행기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비장의 카드,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보았다. 왠지모를 구슬픈 느낌이 묻어나는 흥겨운 음악이 좋았다. 그리고 곧 직접 마주하게 될 기대감에, 영화 속 말레꼰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의 모습에 애정이 갔다. 그리고 아바나를 직접 마주했을 때, 순간 벅차올랐다.

식당에서 종업원 아저씨가 연주를 해줬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노래도 연주해주셨다.
식당에서 종업원 아저씨의 연주를 들으며(Chan Chan도 연주해주셨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여행 중 방문한 도시에서 한 번 이상은 들었다.)은 Chan Chan이다. 블로그 글을 쓰느라 오랜만에 찾아 들었다. 여행 첫 날 아바나에서 느낀 그 생경한 느낌을 다시 불러일으켜주었다. 아~ 쿠바의 향기!

'올드'라고 칭하기 어색할 정도로 쨍한 빛깔의 올드카가 많았다.
‘올드’라고 칭하기 어색할 정도로 쨍한 빛깔의 올드카

쿠바는 아이러니한 구석이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 또한 외부인들이 먼저 가지고 있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우리가 올드하다고 말하는 것, 시간이 멈추었다고 말하는 것이 따지고보면 철저하게 외부인의 시각에서 붙인 말이 아니던가. 어쩌면 쿠바는 늘 새롭게, 살아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샌프란시스코데 아시스 광장에서 열렸던 United Buddy Bears 전시
마침 샌프란시스코데 아시스 광장에서 열렸던 United Buddy Bears 2015전시

마침 발길이 닿았던 샌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광장에서 아주 익숙한 느낌의 곰돌이들을 발견했다. 역시나. 내가 교환학생으로 반 년을 보낸 독일 베를린의 흔적이다. 베를린의 상징(?)이 곰이다. 이 곰들의 고향이 베를린이라고 적혀있었다. 독일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닌가 한다. 각 나라 출신의 예술가가 직접 자국의 곰돌이 작업을 했고, 이 곰돌이들은 전 세계를 돌며 수십회의 전시를 해왔다고. “손에 손잡고” 있는 곰돌이들은 우리가 평화적으로,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쿠바에서는, 북한 곰과 남한 곰이 나란히 정겹게 서있었다.
쿠바에서는, 북한 곰과 남한 곰이 나란히 정겹게

쿠바에서, 게다가 북한곰 남한곰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한때 쿠바가 상징했던 것들과, 지금 쿠바가 새로이 상징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렇다. 정작 비행으로 30여시간 떨어져있는 내 고국에서는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던 광경아닌가. 언제쯤 이 곰들처럼 될 수 있을까. 

해가 지고 있는 말레꼰.
가로등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구름, 바다, 건물.. 말레꼰의 모든 요소들이 서서히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구름, 바다, 건물.. 말레꼰의 모든 요소들이 서서히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사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Chan Chan이 흐르는 말레꼰.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Chan Chan이 흐르는 말레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