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가 선물해준 사람들 – 쿠바(4)

혼자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던 나의 쿠바여행. 비운만큼 채워진다고, 가볍게 떠나온 내게 쿠바는 많은 사람들을 선물해 주었다.

새로 사귄 많은 이들이 파라다이스 호스텔의 여행자 친구들이었다. 이미 무리지어 함께 여행온 친구들도, 나와 같은 홀로 여행객들도 많았다.

헤밍웨이 생가. 사냥을 좋아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에
아바나 근교의 헤밍웨이 생가. 사냥을 좋아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에

독일 뮌헨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헤밍웨이 생가를 방문했다. 베를린에서의 경험이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되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Kein Bier Vor Vier’는 독일인들을 빵 터뜨리기 좋은 문장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가 키웠던 개들의 무덤이란다. 뒤에 보이는 배는,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이 된 어부에게 헤밍웨이가 선물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키웠던 개들의 무덤이란다. 뒤에 보이는 배는,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이 된 어부에게 헤밍웨이가 선물했다고 한다

토론토에서 온 캐나다 친구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기도 했다. 토론토와 아바나는 지도상으로 경도가 거의 비슷하다. 비행기로 4시간쯤 아래로 내려오면 아바나가 나오는지라, 특가상품이 많단다. 토론토 4인조는 방학을 맞아 발견한 특가 상품으로 즉흥 여행을 온 차였다.

토론토 4인방과 여기 저기 도시 구경을 하다가, 넉살 좋은 쿠바노가 길안내를 자청하며 말을 걸어왔다. 알고보니 진짜 쿠바노는 아니었고, 아프리카 가봉에서 유학온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고 구경중이던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그와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잘 안다는 바로 우리를 인도했다.

쿠바여행객에겐 여행자로서 오픈 마인드를 가질 것보다, 경계심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다니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나 또한 숱한 쿠바여행기를 통해 동정심을 내세우는 구걸에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틀간 아바나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들이 슬그머니 그 경계심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우리 5인방은 바텐더와 그 가봉 의사 몫의 모히토까지 다 지불하게 된 상황에서야 아차 당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러고 난 이후에도, 그 남자는 우리를 졸졸 따라오며 돈을 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즐겁기만 했던 여행자의 마음이 상처를 입었던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현지인에 낚여서 반강제로 들어갔던 바. 미끼를 물었었다. ㅠ ㅠ
현지인에 낚여서 반강제로 들어갔던 바. 미끼를 물었었다. ㅠ ㅠ

묘한 매력으로 버릴 것 하나없는 쿠바여행에서, 단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으로 여행객들이 꼽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인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일부 현지인들이다. 쿠바에는 외국인 전용 화폐가 따로 있는데, 내가 여행 중일 때는 1외국인 화폐 = 24~25현지화폐 정도로 물가 격차가 컸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댓가로 받는 월급이, 관광객들이 쉽게 소비하는 하루치 돈에도 미치지 못하니 당연하게 생겨난 불편함이 아닐까.

그 전날 아바나 시내 지리를 익힐 겸 거닐다 대성당 광장에 다다랐을때였다. 파란 하늘로부터 쬐어 내려오는 햇빛과 그를 의연히 받아내는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에 반해, 광장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아바나 대성당
아바나 대성당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꼭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는 그런 관심을 썩 반가워하는 터라 그 상황을 꽤나 즐긴다. 그 날도 독일에서 오신 큰 키의 ‘루돌프’ 아저씨가 관심을 건네오셨다. 그리고 어린 꾸바노 한명이 또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알고보니 그 친구도 그림을 그리는 친구였다. 돌돌 말았던 종이를 펼쳐내니, 며칠째 쌓아올린 성실한 선으로 대성당의 모습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게르만족 독일인 루돌프 아저씨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나와 꾸바노 소년 곁에 짝다리를 짚고 서계셨다. 안그래도 큰 사람이 더 커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꾸바노 소년이 쿠바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면, 우리가 질문하는 양상이었다. 주된 주제는 쿠바인들의 가난한 삶이었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안 그 소년은 때로는 살짝 격앙되기도 했다. 사실 대화하는 동안 그 꾸바노 소년이 내게 돈을 구걸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 짐짓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불편한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어색한 기분으로 자리를 떴다. 여행지에서 동호인을 만난 기쁨이 괜시리 퇴색되는 것 같아 기분이 울적해졌었다. 

대화 내내 내가 받은 느낌은, 그의 말이 참 두서가 없었고 주의가 산만했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영어실력이라기보단, 삶의 치부를 외지인들에게 말하는 데서 오는 생래적 수치심이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여행 후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난 지금, 선뜻 그 소년에게 ‘그림 참 멋지다! 나한테 팔아!’ 하지 못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된다. 그림을 그리다 눈을 마주쳤을 때 소년의 눈동자가 떨렸었고, 나와 눈이 마주칠라 싶으면 시선을 이내 곧 돌리곤 했었는데… 그 소년이 대화 말미에 돈을 언급한건 그런 망설임과 주저함을 이겨낸 결과일텐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간난아이를 무기삼아 분유값을 달라고 당당히 말하던 꾸바나와는 달랐었는데.

꽃다운 나이에 자신이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환경에 대해 고민을 했을 그 꾸바노 소년.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사는 동갑내기 여행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때때로 구겨지는 마음을 추스려가며 어른이 되어갈 그 친구가 참 마음에 남는다.

저녁에 파라다이스 호스텔 루프탑 바에서 여행자들끼리 어울리며, 서로가 보고 겪은 쿠바에 대해 나누었다. 독일무리, 캐나다무리, 호주, 이탈리아 친구 함께 모여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젊은 세대의 일자리 부족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현상임을 생생하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간밤, 이야기 꽃이 만개했던 파라다이스 호스텔 루프탑
간밤, 이야기 꽃이 만개했던 파라다이스 호스텔 루프탑

여행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내 일상에 특별한 순간들을 수놓아 주지만, 늘 반짝거리지만은 않는다. 때때로 여행자의 마음엔 생채기가 남기도 한다. 쿠바 여행이 유독 좋았던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빛나는 부분만 카메라에 담기 바쁜, 그런 여행을 나도 가끔씩 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는 여행. 이런 여행이 주는 여운이 더 깊고 짙다. 

아직도 아바나가 준 선물들은 내 스케치북에, 머리속에, 그리고 마음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