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쿠바스러운 곳으로 – 쿠바(5)

쿠바여행객이라면 꼭 한번 체험해봐야 할 것이 바로 “까사”라고 불리는 민박이다. (casa :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 파란색 닻 모양의 마크를 달고 있는 집들은 모두 숙박업을 한다고 봐도 되는데, 특히 관광지로 이름이 난 곳이라면 말 그대로 ‘길에 널려있다’할 정도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굳이 미리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도 마음 편히 쿠바를 찾을 수 있는 이유다. (사실 미리 예약을 하려고 해도 온라인 예약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 더 많긴 하겠지만 ㅋㅋ)

숙박이 가능한 집은 파란 닻 모양의 표시를 달아둔다.
숙박이 가능한 집은 닻 모양의 표시를 달아둔다.

경험상 내가 묵어본 까사에서는 여행객에게 주로 침대가 2~3개 딸린 큰 방을 제공한다. 일행이 있다면 독채처럼 쓸 수 있고, 아니라 하더라도 혼자서 큰 방을 독차지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숙박도 해결하고, 쿠바인들의 삶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기에 쿠바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체험 요소로 꼽힌다. 나 또한 원래는 전체 일정을 까사에서 묵고 싶었으나, 까사를 이용하면 애초에 함께 떠나온 일행이 아니고서야 숙소에서 새 친구를 만나 사귈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방이 아무리 넓고 좋아도 혼자서는 너무 심심하지 않겠는가. 혼자 여행객에게 아바나 호스텔이 중요한 이유이다. (작은 도시일수록 호스텔 같은 대형(?) 숙박업소가 잘 없다.)

하지만 아바나 파라다이스 호스텔에서 꼬박 이틀을 보내는 동안에도, 나와 동선이 비슷한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바나에서 묵는 동안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이 이미 여행을 끝나고 돌아가는 여정에 있는 여행객들이었다. 혼자서라도 길을 떠날까 하고 고민을 슬슬 하던 차에, 나와 비슷한 루트를 하루쯤 먼저 밟을 예정인 중국인 언니 ‘잘란’과 연이 닿았다. 잘됐다 싶어 같이 여행다니자고 제안을 했고, 흔쾌히 수락한 그녀는 비냘레스에서 본인이 묵을 예정인 까사 주소를 남기고 먼저 떠났다.

잘란이 남기고 간 비냘레스 까사 주소. 이렇게 여행자들끼리 까사 정보를 교환한다.
잘란이 남기고 간 비냘레스 까사 주소. 이렇게 여행자들끼리 까사 정보를 교환한다.

이틑날, 호스텔 할머니를 통해 미리 예약해둔 개인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비냘레스. 비옥한 토지와 신기한 지형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담배로 만든 시가가 특히!) 잘란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한나절의 트래킹 정도로 비냘레스는 만족하고 다음날 바로 라르가 해변(Playa Larga, 플라야 라르가)로 함께 떠났다.

한 손엔 물통, 한 손엔 시가를 든 가이드와 함께한 비냘레스 트레킹
한 손엔 물통, 한 손엔 시가를 든 가이드와 함께한 비냘레스 트레킹
비냘레스의 비옥한 황토에서 자라고 있는 담배잎. 요게 바로 쿠바산 시가의 비밀이 아닐까
비냘레스의 비옥한 황토에서 자라고 있는 담배잎. 요게 바로 쿠바산 시가의 비밀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집주인과 가장 교류가 많았던 곳이 Playa Larga이다. 그래서 체류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가장 쿠바스러운 곳으로 기억한다.

아바나에서는 무리 중에 스페인어를 잘하는 여행동무가 적어도 한명은 늘 있던 터라, 나의 broken Español을 써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까사 주인인 헤수스 아저씨는 영어를 하지 않는 분이셨고, 잘란은 스페인어 1개월차, 나는 3개월차였기에 이 까사에서는 내멋대로 마구 시도해볼 수 있어서 재미가 쏠쏠했다. 재미난 상황도 있었다. 한 번은 잘란이 물을 찾느라 냉장고를 열었다. (동네가 워낙 작아서 슈퍼마켓이 따로 없었고, 각 까사에서 물, 콜라 등 음료를 팔았다.) 그런데 그 냉장고는 관광객 판매용이 아니라 집주인들이 쓰는 냉장고였다. 당황한 잘란에게, 헤수스 아저씨는 생각나지 않는 단어와 몸짓으로 설명하려 안간힘을 쓰고 계셨다. 그 때 내가 외쳤던 말이 바로 ‘Otra Frio!’ (다른 냉장고!)였다. 나의 외침을 듣고 헤수스 아저씨의 얼굴에 웃음 꽃이 활짝 폈고, 잘란은 시원한 물을 사먹을 수 있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에피소드인데, 그 상황이 너무 재밌고 웃겨서 아직도 웃음이 난다. 그리고 여행 후 홀랑 다 까먹어버린 3개월 속성 스페인어인데, 어째 저 문장만은 에피소드와 함께 뚜렷하게 남아있다. 아마 평생 못잊을 단어가 될 것 같다.

라르가 해변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던 중에 그린 그림. 마을이 참 정겨웠다.
라르가 해변에서 한가로이 저녁 산책을 하던 중에 그린 그림. 조그만 해변가 마을이 참 정겨웠다.

여행 중에 쿠바만의 독특한 숙박 시스템인 까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 기회가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바를 종합해 보면, 어느 도시에나 까사가 넘쳐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쿠바의 보통 수준에서 월급이 몇십 불 수준이라고 했을 때, 까사의 하루 수입(1박에 인당 최저 10달러~20달러 선)이 현지 물가로 치면 어마어마한 가격인 셈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화폐의 차이에서부터 큰 이윤을 남기는 셈이니, 다들 달려들고 싶을 수밖에 없다. 까사 뿐만 아니라 택시, 트라이시클도 마찬가지다. 아바나에 갓 도착한, 현지 물가에 감이 없는 외국인들이 택시 기사에게 가장 좋은 타겟이 된다. 그렇다고해서 엄청난 바가지를 쓴 느낌이 드는가하면, 여전히 저렴하게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았다. 현지인 물가와 관광객 물가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 하다. 혹자는 쿠바 사람들의 꿈이 트라이시클 마련 – 택시용 자동차 마련 – 까사용 집 마련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까사 영업을 하기 위해선 인증된 마크를 달아야 하고, 그 말인즉슨 국가가 관리를 받게 된다. 실제로 까사에 투숙할땐 늘 장부에 인적사항을 기입했다. 그러니 까사 주인들이 국가의 관리를 피해 진짜 알짜배기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투숙객을 상대로 한 식사 판매이다. 묵는 숙소에서 직접 나를 위한 특식을 요리해주는 셈이니, 호텔로 치면 룸서비스인 셈 아닌가. ‘이 까사 밥이 참 잘나와!’는 까사 추천의 큰 이유가 된다. 가격도 저녁이 9~10불, 아침은 4불 정도였다. 

헤수스 아저씨 까사의 명함. 여행 중 다른 여행자에게 추천한다며 넘겨주느라 사진으로 남겼다.
헤수스 아저씨네 까사 명함. 여행 중 다른 여행자에게 강력 추천한다며 넘겨주느라 사진으로 남겼다.

아침, 저녁식사를 까사에서 할 것인지를 미리 말해두면, 원하는 시간에 거한 한 상을 받아볼 수 있다.(이렇게 거한 상에 익숙하다가 그렇지 않은 까사를 가게 되면 내심 실망하게 된다.) 내가 playa larga 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랍스터 중 고를 수 있게 해주었고, 실제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준 식사에 놀랐다.

헤수스 아저씨가 차려주신 귀엽고 애정가득한 아침상 >0<
헤수스 아저씨가 차려주신 귀엽고 애정가득한 아침상 >0<

현지사람들과 가장 가까울 수 있었던 라르가 해변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원래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전혀 계획에도 없었던 곳이었다. 나의 쿠바 여행 메이트 잘란을 따라 즉흥적으로 찾게 된 마을, 그 진짜 목적은 다음 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