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다는 것. @San Francisco

지난달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요즘은 핫한 Bay Area라고들 많이 하지만 )를 방문했다.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를 보고 느꼈던 샌프란시스코의 동화같은 느낌이 늘 궁금했다. (물론 빅 히어로에서는 샌프란시스코와 도쿄를 절묘하게 섞어 묘사했기에 순수하게 샌프란시스코만의 느낌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기법 자체에서 오는 느낌이었을 수도 있다)

동화의 느낌이 가장 강했던 장면은 비탈을 굽이 내려오는 롬바드가였다.  그런데 실제로 차로 내려와본 그 길은, 북적이는 관광객들과 (그로 인해서인지 그냥 계절탓인것인지) 시들어 고개를 숙인 수국 때문에 크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사실 내게 더 와닿았던 풍경은 바로 그 거리에서 한 블럭 걸어 내려오다 발견한 장면이었다. 언덕이 높게 (실제로 생각하는것보다 도로의 경사가 꽤 가파르다) 솟아 있는 와중에 도로가 쭉 뻗어있는, 너무나도 샌프란시스코다운 풍경이었다. 끝없이 줄지어있는 건물들 만큼이나 빽빽하게 줄지어 있는 자동차들도 너무나 미국스러웠고, 그만큼 또 같이 늘어져있는 전깃줄도 일년 내내 따뜻한 날씨를 즐기는 그 팔자가 좋아보였다. 

10월 한 달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음 사실 올해 내내 많은 일이 있었지. 그리고 앞으론 더 많겠지 ㅋㅋ) 그런데 그 많은 일들을 잘 소화하면서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더 재밌고 진취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스스로를 던진 후에 찾아오는 여러가지 감정들 사이에서 자주 롤러코스터를 탄다.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이상에 가까워지겠노라 발버둥치는 불행을 반복하도록 만들어져있는 걸까.

괜한 상념이 많이 드는 밤이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찾는다. (그리면 가장 좋을텐데, 여독 탓에 새로 그릴 에너지는 없군 ㅎㅎ) 내가 가장 사랑하는 활동이며, 가장 나다울 수 있는 행위. 그래서 괜히 그림을 꺼냈다. 그리고 내가 발견했던, 내 눈에 가장 샌프란시스코스러웠던 풍경을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iloveskevel! 블로그를 만들어 두고 너무 게을리 관리했다. 무엇인가를 꾸준하게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그나마 그림은 꾸준히 그려서 다행이다. 휴 그거 하나라도 평생 꾸준히 하자. 다 블로그로 옮기진 못할 듯싶으니 ㅋㅋㅋㅋㅋㅋ) 

스스로의 모자람 부족함을 늘 반성하고 정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너무 무겁게 다가올 땐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칭찬할 거리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림을 많이 그리자 . 그리고 감상하고 색칠할 때 행복하니까 🙂

대체 답다, 스럽다는 게 무엇인지 가끔씩은 짜증이 나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것 또한 그 ‘답다’는 것 속에 일부라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해진다. 토닥토닥 

 

헉! 대만여행에 비자가 필요했던가? – 대만 타이베이 모녀여행(1)

2016년 6월 3일~ 6월 6일. 내게는 역사적인 3박 4일이었다.

모처럼의 연휴를 활용해, 3박 4일간 어머니를 모시고 대만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제법 해외여행 노하우를 쌓았다는 딸내미와는 다르게, 이번 여행은 어머니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진작에 어머니를 모시고 바다를 건너고 싶었었는데, 마음같지 않은 세상의 타이밍은 올해에서야 첫 모녀 해외여행을 성사시켜 주었다.

엄마는 출발 몇 개월 전, 처음으로 여권을 만드셨다. 소녀같은 우리 엄마, 얼마나 설레어하셨을지. 구청에 여권을 신청하러 가셨을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떳다 떳다 비행기
떳다 떳다 비행기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참 설레고 기대가 되는 이벤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에 있어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나는 우리 엄마가 최고의 여행메이트가 될 것이란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의 취미 또한 그림그리기이다. 모전여전인걸까.엄마는 몇년 전 동네 문화원의 미술강좌를 수강하시면서 본격 미술취미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셨다. 전공자의 길을 일찌감치 때려쳤던 딸내미는, 차마 내다버리지 못하고 보관중이던 갖은 화구로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보냈다.

엄마에겐 작업실도 있다. 바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우리집 베란다. 멋드러지게 펼쳐진 이젤 옆으로 물감, 캔버스, 붓통 등 온갖 화구들을 다 갖춘 엄마의 작업실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 특유의 물감 냄새가 스며있다.

그림그리는 우리 엄마
그림그리는 우리 엄마. 그림 그리시는 고운 모습을 지켜보다가 몰래 그렸다.

어릴 적 미술학원을 나름 전문적으로 다닌다고 설쳤던 나인데, 그때의 나는 비교올리지도 못할 정도의 포스를 풍기신다. (엄마는 늘 취미반일 뿐이라며 아니라고 하시지만) 수채화, 유화 습작들이 쌓여있는 그 공간은 엄마의 손길이 가득한 정말 멋진 공간이다. 때론 과감하게 색을 내는 붓터치를 보자면, 그리고 몇 장씩 쌓여있는 같은 그림의 습작들을 보자면,  입시 미술의 틀 안에서 놀았던 (같은 그림은 지겨워서 절대 두번 못그리는 성격의) 나는 부끄러워질 뿐었다.

다시 여행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엄마는 여행 중에 그림을 그리느라 한참을 멈춰있을 딸내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주실 수 있는 분이다. 어쩌면 같이 그림을 그리실지도. 언젠가 유럽 모처의 안개낀 호숫가 마을로 함께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러 가고 싶다.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가기도 전에 이런 소망들부터 뭉게뭉게 피어났다. 언젠간 가겠지. 믿는다, 나의 실행력)

여튼 첫 여행이니만큼,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게 그리 멀지 않은 대만 타이베이로 첫 행선지를 정했다. 그리고 나의 제1의 목표는, 엄마를 편하고 즐겁게 모시는 것. 하여, 나는 미리부터 나름의 경험치를 십분 활용해 야심찬 준비를 하였다.

엄마는 나만 믿고 몸만 오시면 된다고 큰 소리를 떵떵 쳤었더랬다. 척척 알아서 가이드까지 다 하는 딸이 되리라고. 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다 아는 노하우들이지만, 괜시리 엄마 앞에서 ‘아이고 우리딸 최고다’하는 칭찬을 듣고 싶었었던 것 같다. 미리 환전해둔 돈 공항에서 찾기, 현지에서 쓸 어댑터 통신사에서 빌리기, 자동출입국심사 등록시켜드리기 등 노련한 여행자의 자태를 뽐내며 공항을 누볐다.

우리가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한 탓인지, 체크인 시작 시간이 생각보다 늦길래 한참을 공항 구경을 하고 다시 체크인을 카운터로 갔다. 그랬더니 이미 인산인해로 북적이는 카운터 앞. 별것 아니지만 나는 또 여행자 신공이랍시고 웹체크인을 시도했고, 전용 카운터에 대기없이 짐을 부치고, 여전히 대기중이었던 많은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쳐 입국심사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엄마가 감탄하시고, 나는 뿌듯할 수 있었던 소소한 포인트 하나 추가!

작년 가을 처음으로 ‘공항 라운지’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신. 세. 계.란 이런것이구나. 항공권, 숙박 예약 후 처음으로 준비했던 건 바로 어머니를 위한 공항 라운지용 카드발급. 지인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폭풍검색으로 검증을 한 후 가족카드가 발급되는 종류로,  라운지 전용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 두었다.

출국전, 인천공항에서만 3개의 라운지를 돌았다.
출국전, 여유가 넘쳤던 우리는 인천공항에서만 3개의 라운지를 돌았다.

공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 모녀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곤히 잠을 청했다. (심지어 나는 이륙도 하기 전에 잠들었다.) 그리고 나온 비행기 기내식. 사실 하늘 위에서 먹는다는 특별한 점 하나 빼고는 음식 자체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아주 특별한 그 점 하나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법이다. 미리 주문해둔 스페셜 밀로 다른 메뉴를 받아내면서 또 엄마 감탄시키기 한번 더 성공.

비행기하면 기내식!
비행기하면 기내식!

‘해외여행 노하우 많은 멋진 딸’ 놀이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승무원이 나눠준 대만 입국신고서, 당연히 엄마는 내게 작성을 위임했고 나는 또 자랑스레 맡겨만 달라며 으쓱했다. 하지만 나를 당황케 한 대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자.

비자 종류와 번호를 쓰라고?

응?

응??

어라????

항공권, 호텔, 현지에서 이용할 투어, 기념품, 방문할 장소, 라운지 신용카드, 환전, 콘센트 등 그 수많은 걸 준비하고 기획하면서 어째서 나는 한번도 ‘비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여권파워 세계 2위라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로서, 무비자 여행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당연히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 국가나 동남아 어딘가라면 차라리 안심했을텐데, 상해에 갔을 때 별도의 비자를 미리 발급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팽팽돌아가는 머리 속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대만에 내렸는데 비자 때문에 입국 거부를 당하면 어찌되지? 나야 그렇다 치는데 엄마는 어쩐다? 아 왜 네이버에 ‘대만 비자’ 이 네 글자를 검색해볼 생각을 못했지, 다른 사람들은 다 발급 받았나? 필요한 거 맞을까?

강심장 우리 엄마는 덤덤해 보였다. 뭘 어찌하든 늘 믿어주는 우리 엄마의 스타일일까. 당황하는 딸 옆에서 당황을 거들어보았자 해결되는 건 없다는 지혜를 터득한 어머니의 위엄이었을까.

나도 다시 차분히 생각을 시작했다.

대만 비자가 필요했다면 내가 무수히 드나들었던 대만여행카페나, 안내책자에 관련 정보가 없을 턱이 없었겠지. 아무도 비자에 대한 말이 없었단 말씀. 즉,  대만도 무비자가 맞을거야!

착륙 후 공항 와이파이 신호를 잡자 마자 검색해본 결과,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대만을 관광목적으로 방문 시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단다. 예상은 했지만 안도의 한숨.

그제서야 뭔가 탁! 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랑하는 엄마랑 즐겁게 여행을 하고싶었고, 엄마의 첫 여행을 위해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긴장을 하고 있었구나. 정작 엄마는 몇번이고 무리할 필요 없다고 나를 다독여 주셨는데. 실제로 엄마는 가고싶은 것, 하고싶은 것에 대해 재차 묻는 내게 간단히 대답하셨었다.

“101타워 이런 사람많은 데 안가도 된다”

“망고빙수 먹고 야시장? 그림 구경이나 좀 했으면 좋겠다”

모녀여행의 초입에서, 나도 모르게 바짝 힘이 들어갔던 어깨를 잠시 내려놓게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랑 나랑, 그저 즐겁고 함께하는 게 좋은 여행이 되기를.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싸우는 일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