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Praha

praha

2011. 8. 7 @체코 프라하 올드시티 어느 호스텔 창가

재료 : 스케치북, 스테들러 플러스펜, “립스틱”

소요시간 : 30분

혼자서 도달한 프라하. 도시 전체에 흐르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여행 내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직전 도시였던 빈에서의 일정이 지체되었는데, 프라하호스텔에 예약해 둔 이틀 중 하루는 ‘에잇 그냥 날리자’하고 당도했다가 no show로 전체 예약이 취소되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자들의 로망 프라하에, 마침 주말의 시작이었던 터라 모든 호스텔 자리는 매진.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칠 상황이었지만, 프라하가 주는 황홀경에 짜증도 금방 씻겨내려갔다. 호스텔에서 맞이한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주는 아름다운 느낌을 기록하고 싶었다.

ㅇ 립스틱 : 프라하의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붉은 벽돌 지붕이다. 이 그림도 그래서 그리고 싶었고. 그 붉은 빛을 너무나도 담고싶었던 나는 파우치에서 하나밖에없던 립스틱을 꺼내서 약지 손가락에 찍어 스케치북에 고이 발랐다.

ㅇ 꼼꼼함 : 지붕이랑 길바닥 벽돌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시간을 꽤 썼다. 아침 기상 직후라서 발휘할 수 있었던 꼼꼼함과 집중력 덕분.

지구별여행자 Ske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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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일.

리움미술관에서 열렸던 서도호 작가님의 ‘집 속의 집’ 전시를 보고난 후 감상을 휘리릭 그려본 감상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동안 그려온 수많은 그림들 중 ‘지구별여행자’ 테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으로 꼽는다.이름을 분절해서 서명으로 삽입한 것도 아마 이 그림을 그렸을 즈음이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전시회의 주제가 “집”이었는데,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서도호 작가님도 도시들을 오가며 ‘나의 집은 어디일까? 어떤 공간이 집일까? 집이란 어떠한 곳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서울&뉴욕&베를린 세 곳의 한 가운데 섬을 짓는 프로젝트를 나타낸 작품이 인상깊었다.)

당시 서도호 작가님의 작품들이 더욱 더 반갑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 분의 주 활동 무대가 서울, 뉴욕, 베를린 세 곳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마침 내가 거쳤던 곳들과 일치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 사전교육으로 서울에 두어 달을 보냈고, 그 후 약 반 년간의 뉴욕에서의 인턴 생활을 했으며, 곧이어 또 반년을 베를린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돌아온 거의 바로 직후에 이 전시회를 보게 되었던 터였다. (감상화에서도 서울, 뉴욕, 베를린을 그려놓았다. 이런 직관적인 감상화라니!)

처음 집을 떠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물론 주말에는 집으로 하교 했다가 월요일 아침에 등교하는 터라, 정확히 아예 나와 산 건 아니었지만) ‘룸메이트’라는 존재와 공간을 공유하는 것도, 매주 캐리어에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것도, 학년이 바뀔 때 마다 방을 옮기는 ‘이사’를 하는 게 당연한 일과처럼 느껴졌다. 이렇듯 꽤 이른 나이에(?) 노마드스러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아마도 내 스스로를 ‘여행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고향집을 오가는 데 편도로 기차로 두세 시간 가량이 걸리게 되었다. 철마다 또다른 룸메이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중 합이 잘 맞았던 친구와는 합하면 몇 년에 이르는 나날을 공간을 나누기도 했다.

짐을 싸고,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공간을 나누고. 그러다보니 어딘가에 진득하게 ‘정착’한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잊고 살았다. 자연스레 나만의 공간을 염원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잠시 묵었던 다락방같던 고시원 방이 내 첫 보금자리였다. (물론 임시로, 또 나는 떠나게 될 것임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었던 차가웠던 느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든게 어떻게 다 들어가 있을까 놀라울 정도로 너무나도 아담했던 방 크기 때문이었는지 ‘보금자리’라는 단어가 으레 주는 따스함 따위는 느낄 수 없었던 공간이었다. 그 따스함이 느껴지려면, 아무래도 ‘가족’이라는 존재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서도호 작가님 작품을 감상하면서 감히 ‘이 작가님 나랑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아’ 하고 단정지어 버렸다. 뭐, 감상은 내 마음이니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 바로 그림그리기와 여행이다. 2009년 여름 어설프게 시작한 스케치+여행. 이제는 내 마음대로 ‘스케블링’이라 부르는 나의 취미. 언젠가 내가 있는 곳에 불이 나면 난 무엇을 가장 먼저 챙길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바로 올해로 9권째 채워가고 있는 스케치북들. 나의 보물 1호(라고 하기엔 이제 권수가 꽤나 되는구나)다. 늘 이 아이들을 아카이빙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가, 블로그도 뭔가 짜잔! 하고 멋지게 해야할 것 같은 욕심스러운 마음에 주저만 하다가 드디어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컨텐츠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생각해봤다.

  1. 스케블링 구경하기 – 9권째로 접어든 나의 스케치북 속에 담긴 기록들을 하나씩 블로그로 옮기는 작업
  2. 스케블링 함께하기 – 딱히 크게 노하우랄 것은 없지만, 지금의 스케블링 스타일을 확립하기까지 겪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소소한 팁들을 정리할 예정.

무슨 순서로 해야할지, 어떤 카테고리를 해야할지 고민을 해봤는데, 답은.. 그냥 내 마음가는대로! 아무래도 그간 그렸던 그림들이 쌓여있으니 1번에 해당하는 컨텐츠가 비중은 훨 많을 것 같다. 가급적 매일 하나씩은 정리해서 올리고 싶다. 당분간은 저녁에 그림을 보며 여행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일과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쌓아놓은 그림들을 다 업로드 했을 즈음엔 또 새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

아래는 블로그용으로 밝기조절을 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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